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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가 몰랐던 우리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등록 2018-06-21 19:43수정 2018-06-21 20:04

김금희 첫 장편 ‘경애의 마음’
반도미싱 팀원 경애와 팀장 상수가
마주치고 엇갈리며 쌓아온 그 마음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창비·1만4000원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사귀었던 산주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경애는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력감에 빠진다. 여름 한 철 내내 맥주와 옥수수를 벗 삼아 버티며 경애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페이스북 연애 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에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것뿐. 운영자 ‘언니’는 떠나간 사람에게 미련을 품고 헛된 꿈을 꾸는 경애에게 냉정하게 충고한다. “그거 그 사람 아니고 그냥 님의 마음일 뿐이야. 그런 건 사랑이 남아 있는 게 아니야. 마음만으로는 뭣도 안 돼.”

김금희의 첫 장편 <경애의 마음>은 마음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경애의 마음을 비롯해 책 안에는 여러 마음들이 등장한다. 경애의 마음이라는 것도 한가지는 아니어서, 냉온과 음양, 경중과 청탁에 따라 여러 형태와 방향을 지닌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리면 어떨지.

운영자 언니는 산주를 향한 경애의 마음을 깎아내리지만, 마음은 경애가 마음대로(!) 억누르거나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경애가 유부남인 산주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다시 이어 가는 데에서 그 마음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얼핏 우리의 소유물로 오해하기 쉬운 마음이란, 사실은 우리 안에 깃들어 우리를 조종하는 기생 생물과도 같다. 이번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지난해 1년 동안 <창작과비평>에 연재한 원고를 정리해 첫 장편 <경애의 마음>을 낸 소설가 김금희.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는 짧은 ‘작가의 말’이 오히려 강렬하다. 창비 제공
지난해 1년 동안 <창작과비평>에 연재한 원고를 정리해 첫 장편 <경애의 마음>을 낸 소설가 김금희.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는 짧은 ‘작가의 말’이 오히려 강렬하다. 창비 제공

“대열이 무너졌고 사람이, 구호가, 거기에 담았던 마음들이 무너지는 동안 경애는 오해를 받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었다.”

<경애의 마음>의 두 중심인물 경애와 상수는 재봉틀을 만들어 파는 반도미싱의 영업 팀원과 팀장으로 한데 엮인다. 두 사람이 같이 일하게 된 것은 이들이 회사에서 일종의 아웃사이더로 비슷한 처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경애는 파업 과정에서 빚어진 성희롱을 노조에 항의하다가 오해를 받고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고, 상수는 ‘낙하산’으로 입사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작가는 주변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챙김으로써 이들의 감추어진 면모를 독자에게 알려주고, 동시에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의 역사와 그에 얽힌 비밀을 조금씩 펼쳐 보인다. 독자가 두 사람을,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비밀이 둘 있다. 경애가 산주와 관계를 털어놓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운영자 언니가 바로 상수라는 사실이 그 하나이고, 또래인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던 1999년에 일어난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다른 하나다. 게다가 둘 모두에게 가장 가까운 연인이요 친구였던 사망자가 알고 보니 동일인이라는 놀라운 우연은 이들을 일종의 전우애로 단단히 묶는 구실을 한다. 이 비밀들을 확인해 가는 동안 경애는 산주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고 상수와 새롭게 시작할 가능성 쪽으로 옮겨간다.

소설은 이야기의 시작에서 끝을 향해 순차적·단선적으로 직진하지 않고 자주 우회하거나 유턴하며 머뭇거리듯 나아간다. 효율과 실적을 중시하는 기업 영업 부서의 생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마음의 결에 충실한 두 사람의 됨됨이에 어울리는 서술 방식이라 하겠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는 일만은 폐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겪은 좌절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둘러싼 스캔들이라는 이중고에 무너진 ‘언니 님’ 상수에게 경애는 이런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회사도 그만둔 채 집 안에 틀어박힌 상수를 찾아온 경애에게 상수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소설은 문을 닫는다.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고유명사가 아닌 추상명사, 그러니까 경애(敬愛)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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