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 테이프-록이 찬란했던 날들의 기록
하워드 스미스 인터뷰, 에즈라 북스타인 정리, 이경준 옮김/덴스토리·3만3000원
50년 다 돼가는 타임캡슐이 있다. 안에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당대 최고 스타들의 대화가 봉인돼 있다. 봉인을 풀면 그들이 하는 얘기를 옆에 있는 듯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된다.
상상이 아니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영화감독인 하워드 스미스는 1969년 라디오 쇼를 맡았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당대를 주름잡던 수많은 록스타, 예술가, 영화인 등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녹음된 인터뷰 릴테이프들을 다락방에 쌓아두었다. 언젠가 그 자료들로 회고록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채 그는 2014년 숨을 거뒀다. 먼지를 뒤집어쓴 테이프 뭉치를 뒤늦게 발견한 건 그의 아들이었다. 이를 영화감독 에즈라 북스타인이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스미스 테이프>다.
존 레넌(왼쪽)과 오노 요코(가운데)를 인터뷰하고 있는 하워드 스미스(오른쪽). 덴스토리 제공
책에는 1969~1972년 진행한 51명과의 인터뷰가 담겼다. 가장 많은 이들은 음악가다. 비틀스의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에릭 클랩턴, 프랭크 자파 등 세계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이름들이 즐비하다. 배우, 작가, 코미디언, 사업가, 정치가, 사회활동가 등도 있다. 그들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당황스러울 정도로 민낯을 드러내며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낸다.
존 레넌과 부인 오노 요코는 1969년 12월 인터뷰를 했다. 이틀 전 둘은 세계 12개 도시에 “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 존과 요코가 해피 크리스마스를 전하며”라는 거리 광고를 했다. 존 레넌은 평화를 역설하는 한편 비틀스의 삐걱대는 속사정도 털어놓는다. 넉달 뒤 비틀스는 해체했다. 하워드 스미스가 조지 해리슨을 만난 건 비틀스 해체 2주 뒤였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가 폴과 존의 곡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겠다고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비틀스를 하는 동안 음악적으로 마치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당시로선 잘 몰랐겠지만 돌아보면 대단히 중요한 순간에 한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여성 블루스 로커 재니스 조플린은 인터뷰를 하고 나흘 뒤 호텔 방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신 주변에는 왜 여자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공연할 때 여자들이랑 있는 게 싫어요. 여자가 많으면 남자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잖아요”라고 장난스럽게 답한다.
스타들의 잘 몰랐던 속살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유명 공연기획자 빌 그레이엄은 “그레이트풀 데드는 록 음악계에 존재하는 가장 미친 녀석들”이라며 그들의 기행을 까발린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은 “난 탐욕스러운 사람이다. 내 야망은 산더미 같은 금괴를 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하다 하워드 스미스와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가 인터뷰 도중 뒤에서 떠드는 기타리스트 론 우드에게 “로니, 닥치라고! 그렇게 뒤에서 이빨 까지 말고, 문이나 좀 닫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는 대목은 눈앞에 영상으로 재생되는 듯하다.
음악과 영화에 관심 있는 이라면 책 중간 어디를 펼쳐도 한 순간에 훅 빠져들 거다. 대중음악평론가 이경준의 매끄럽고 깊이 있는 번역이 읽는 맛을 더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