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유시민 지음/돌베개·1만6천원
지성에 영양을 직접 주입하는 책도 있지만, 영양식이 있는 곳에 이르는 지도를 보여주는 책도 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글쟁이·말쟁이 중 한 명인 유시민의 새 책은 역사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맵북과도 같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븐 할둔, 레오폴드 랑케, 칼 마르크스, 에드워드 핼릿(E. H.) 카, 아놀드 토인비, 재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를 비롯해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신채호·백남운까지 ‘웬만한 시민’들에겐 이름이 낯익은 역사학자들의 주요 업적과 연구 방법, 태도를 망라한다.
유시민이 이들의 작업을 엮어꿰는 핵심 고리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역사가는 과거에서 사실을 길어올리는 사람인가, 사실을 재구성하는 사람인가? 왜 어떤 문명은 흥하고 어떤 문명은 망했는가? 진화는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가? 지은이는 이런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어렵고 두툼한 역사서들을 읽느라 너무 진을 뺄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다만 한국에서 등산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백두대간’ 의 개념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듯, 좀더 풍부한 역사 정보를 갖춘다면 위대한 역사서의 가치를 알 수 있을 터. 이 책을 읽고나면 유시민이 ‘여러 번 올라가도 다 알기 어려운 산’이라고 표현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깊이를 즐기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난다.
최근 평화체제를 향한 급행열차를 탄 2018년 한반도를 헤로도토스라면, 사마천이라면, 토인비라면, 신채호라면 어떻게 기록했을지 상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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