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원 기록, 정택용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기획/오월의봄·1만5500원 2008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중증장애인 8명이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석암재단 산하 김포 베데스다 요양원의 비리가 알려져 공분을 샀지만 그저 일개 ‘나쁜 시설’의 문제로 여겨질 때였다. 이 요양원에 거주하던 8명은 ‘장애인도 지역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라’며 거리에 나섰다. ‘탈시설’ 문제가 우리 사회에 처음 공개적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10년이 흘렀다. 일부 탈시설지원체계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말한다. 비장애인도 살아가기 벅찬 사회에서, 24시간 먹고 재워주는 시설은 그나마 장애인들을 위한 ‘최선’ 아니냐고.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물어본 적 있는가? ‘정말 그곳이 당신에게 최선인가요?’ 여기 11명의 중증장애인들과 발달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기획한 <나, 함께 산다>는 길게는 수십년씩 시설에서 살다가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이상분, 유정우, 김범순, 신경수, 최영은, 김진석, 홍윤주, 정하상, 김은정, 남수진씨와 아직 시설에 머무는 이종강씨의 구술을 통해 ‘집단 수용시설’이란 시스템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20대에서 70대까지 세대도 다양하고, 장애를 갖게 된 경위도 천차만별이고, 시설에 들어온 사연도 제각각이다. 그래도 이들이 말하는 것은 어딘가 닮아 있다. ‘시설’은 먹고 자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물론, 씻기 싫어도 내 은밀한 구석을 내보이며 씻김을 당해야 하고, 주말에 외출하고 싶어도 봉사자들을 맞아 웃으며 사진 찍어야 하고,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장애등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주어진’ 서비스는 결국 생각하는 자유까지 억압한다. 그렇다고 분노와 한탄으로만 차 있는 책이라고 오해는 말길. 모델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사고를 당했던 70대의 김범순씨는 “화려했어도 다 부질없다. 오늘이라는 날짜는 다신 안 와. 흘러간 걸 붙들면 계속 척만 져”라며 유쾌하게 삶을 달관한 입심을 보여준다. “기름 넣으러 정우가 와서 노래 불러줬어. 정우가 날 살렸어”라는 이상분씨와 남편 유정우씨의 연애 이야기는 애틋하고 따뜻하다. 갖가지 합병증으로 시설에 머물지만 동료들에게 ‘탈시설’ 방법을 안내하는 이종강씨가 “사람은 세상에 왔으면 누구에게나 자기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말하자면 여기 동산 어느 모퉁이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사람 아닐까, 여기서 잊지 않고 이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 내 역할 아닐까“라고 할 땐 숙연해진다. 기록자는 굳이 캐묻지 않는다. 어떤 챕터는 구술자의 말을 그대로 살리는가 하면, 어떤 챕터는 기록자가 느낀 당혹감, 갈등까지 고스란히 묻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11명의 개성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왜 100명의 비장애인에겐 100개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장애인들은 하나로만 볼까, 장애인들을 위한다면서 사실은 사회가 비장애인들을 위해 그들을 배제하는 건 아닌가. 후딱 읽히지만 책이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이상분씨가 말했다. “어떤 할아버지는 나한테 도,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으래. 그래서 화났어. 약한 사람이 살(수 있으)면 (그 사회는 누구나) 다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없어지라고 그러지?” 아무도 없어지지 않는 사회, 그러면 정말 좋은 사회 아닌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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