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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더 나은 삶을 위한 ‘뇌과학’ 콘서트

등록 2018-07-05 19:39수정 2018-07-05 19:56

정재승, 강연 내용 묶어
17년 만에 낸 단독 저작
막연한 두려움 떨쳐내고
미래로 향하는 친절한 안내
열두 발자국
정재승 지음/어크로스·1만6800원

창의적 인재의 대표격이자 디지털 시대의 ‘구루’로 추앙받던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연설에서 대학시절 ‘캘리그래피’ 수업을 청강했던 추억을 꺼냈다. 아날로그의 결정체와도 같은 아름다운 손글씨는 젊은 잡스를 매혹시켰다. 그는 이 강렬한 추억이 훗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훗날의 삶이란 물론 매킨토시와 아이폰 개발로 이어지는 디지털 혁명의 전위다. 도대체 손글씨와 디지털이 무슨 상관이었을까?

상관이 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상관이 있다. 뇌과학자이자 탁월한 대중강연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강연집 <열두 발자국>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고 소개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기발한 발상을 했을 때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으로 뇌를 찍어봤더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것으로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늘 보는 것과는 다른 정보들, 이를테면 과학 전공자가 인문학 책을 들여다본다든가,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든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지난 10년간 저자의 강연 중 호응을 얻었던 12개를 정리해 묶은 이 책은 뇌과학을 통해 본 삶의 성찰이자 미래 세상에 대한 안내서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그리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뇌는 아직 먹이와 짝을 찾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던 원시시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진들은 2000년대 중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누가 더 유능해 보이는가 물었다. 얼굴만 보고 학생들이 찍은 인물과 실제 선거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 실험을 8~13살 아이들에게 실시했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고도의 이성적 판단인 것 같은 투표조차 직관과 감정에 치우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정치적 결정도 이러니 쇼핑 등 대부분의 일상적 결정은 비합리와 충동으로 점철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같은 뇌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재고하고 늘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 그래서 결국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재승 교수는 지난 10년간 했던 강연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12편의 강연을 묶어 17년 만에 단독 저서 <열두 발자국>을 냈다. 사진 마이크임팩트, 어크로스 제공
정재승 교수는 지난 10년간 했던 강연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12편의 강연을 묶어 17년 만에 단독 저서 <열두 발자국>을 냈다. 사진 마이크임팩트, 어크로스 제공

1부는 뇌과학을 통해 인간이 저지르는 행동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조언들로 채우고 있는 한편 2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 등 새로운 시대의 표짓말들을 다룬다. 무언가 엄청난 변화인 것 같지만 그 실체는 모호해서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미래 사회는 어떤 것일까, 거기서 인간은 어떻게 지금과 다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져서 고통받을 것이다’ 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예측들에서 안개를 걷어내고자 한다. 이를테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약사는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지금과 같은 약사의 역할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겠지만 약국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약국의 역할 자체가 지금과 달라지고 약사의 역할도 조정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입니다.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합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산업혁명’이라는 명명이 이뤄졌듯이 혁명은 천천히 이뤄질 것이라고 우리를 안도시킨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의 아이디어로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다. 많은 데이터와 레퍼런스, 그리고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이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도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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