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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재규어가 인간을 보는 순간, 재규어 역시 인간이다

등록 2018-07-05 19:52수정 2018-07-06 11:13

브라질 출신 인류학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원주민 철학에 기댄 새로운 인류학
서구의 문화적 상대주의 겨냥한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의 기획
식인의 형이상학-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지음, 박이대승·박수경 옮김/후마니타스·1만9000원

현대 인류학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브라질 출신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67) 브라질 국립박물관 교수는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삼아 인류학과 철학을 횡단하며 ‘존재론적 전회’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류학자다. 기존 서구의 근대적 존재론은 ‘자연’과 ‘문화’를 나누고,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실재인 ‘자연’을 여러 ‘문화’들이 각기 다르게 파악한다는 식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를 비롯한 최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서구중심주의적 이분법을 부정하는 대신 아마존 원주민의 철학에 기대는 등 새로운 이론들을 내놓았는데, 이런 흐름은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라 불리고 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식인의 형이상학>(2009)은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의 주요 이론과 개념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는 저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기틀로 삼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의 인류학적 문제 설정과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담론을 교차시킨다.

책의 첫머리에서 지은이는 이 책이 “<안티 나르시스>란 책의 소개서”라고 말하는데,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 속 테마처럼 <안티 나르시스>는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굳이 집필하지도 않은 가상의 책을 언급한 것은 지은이가 품고 있는 학문적 야심을 선언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것은 인류학을 “진정으로 모든 식민주의의 원천이자 기원인 서구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사유를 영속적으로 탈식민화하는 실천-이론”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서구중심주의적 근대성은 언제나 ‘타자’인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이때 타자는 인간인 주체에 의해 고정되며, 인간은 타자 속에서 자기와 같거나 다른 모습을 찾아내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티 나르시스>는 이 같은 서구중심주의적 존재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획이며, 때문에 오랫동안 인류학의 관찰 대상, 곧 타자이기만 했던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이 이런 새로운 ‘탈식민’ 기획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브라질 출신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는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와 같은 논의를 통해 인류학에서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브라질 출신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는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와 같은 논의를 통해 인류학에서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은이는 2장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인종의 역사>에 써둔 우화를 인용하는데, 이 우화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제기하는 이론인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를 함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안티야스 제도에서 스페인인들이 원주민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탐색하려고 조사단을 파견하는 동안, 원주민들은 백인의 시체도 썩는지를 오랜 관찰을 통해 검증하려고 백인 포로들을 물에 빠트리는 데 열중했다.” 유럽인은 원주민이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반면, 원주민은 유럽인이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고정된 ‘자연’만이 존재하며 이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는 다양한 ‘문화’가 있다고 여기는 유럽인의 태도와, 이와 다르게 다양한 유형의 존재자들이 다양한 사물들을 ‘같은’ 방식으로 본다고 여기는 원주민의 태도가 있다.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는 이런 원주민의 태도로부터 얻어낸 실천적 이론이다. 원주민은 “정신의 단일성과 신체들의 다양성을 전제한다.” 이들의 세계관 속에서 우주의 행위자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잠재적인 인격, 곧 영혼을 지니고 있지만, 신체적인 차이에 의해서 제각기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예컨대 포식자인 재규어가 먹잇감으로서 우리를 바라볼 때, 재규어는 자신을 인간으로, 우리를 자신이 잡아먹을 동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피인 것이 재규어에게는 맥주다. 지은이는 이런 원주민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이란 주체의 자리를 고정하고 ‘사물 그 자체’로서 타자를 바라보는 ‘나르시시즘’에 충격을 주는, ‘관점주의’를 제안한다. “관점주의는 불변의 한 가지 인식론과 가변적인 존재론들을 전제한다.”

프랑스 출신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출신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관점주의’는 ‘다자연주의’로 연결되는데, 이것이 ‘다문화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우리가 피라고 보지만 재규어는 맥주라고 보는 미지의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피로 보고 재규어가 맥주로 보는 자연적 대상은 “피/맥주” 다양체다. 재규어와 우리의 자연은 동일하지 않으며, 관점들의 수만큼 다양체를 구축하는 측면들이 늘어날 뿐이다. 이런 접근은, ‘자연은 유일하지만 문화는 다양하다’면서 구조적 차별의 기틀을 만들어온 ‘다문화주의’를 뒤집고 비튼다. ‘관점주의’에 힘입어, 이제까지 ‘자연은 단일하지만 문화는 다양하다’고 여겨온 고정관념을, ‘문화는 단일하지만 자연은 다양하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꿔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존재론적 일원론은 결국 인식론적 이원론의 폭발적 증식이라는 대가를 치른다”며, 그런 이원론들이 “특히 두 세계의 주민을 차별하는 것을 두 세계의 통일을 위한 조건으로 요구해왔다”고 지적한다. 또 “소수 인류학은 (이원론을 집행하는) ‘거대 분할자’에 맞서 작은 다양체들을 증식시킬 것”이라며 이 기획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원주민 철학이 ‘경이로운 귀환’에 해당한다면 레비스트로스와 들뢰즈·가타리의 만남은 ‘흥미로운 교차’에 해당한다. 차이, ‘리좀’, 다양체, 잠재성, ‘-되기’ 등 지은이가 구사하는 개념들에서 보듯 이 기획은 들뢰즈·가타리의 작업에 크게 기대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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