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와이즈베리·1만6000원 2017년 초 미국 실리콘 밸리는 한 여성의 폭로로 발칵 뒤집어졌다.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이자 빠른 시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 중 1위로 꼽힌 우버에 만연한 성추행이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수전 파울러라는 젊은 여성 엔지니어가 입사 첫날부터 당한 성적 모욕과 성차별, 문제제기를 무마하려는 조직적 압력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파문은 실리콘 밸리를 넘어 미국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이로 인해 성추행과 관련된 20여명의 직원뿐 아니라 성공 신화의 주역인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도 옷을 벗어야 했다. 이게 비단 우버만의 문제였을까? 우버 사건은 ‘테크사회’의 일상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전세계적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된 실리콘 밸리가 기실 ‘너드’와 ‘브로’로 축약할 수 있는 남성중심 문화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 저자는 먼저 질문한다. 과연 실리콘 밸리는 정말로 남성들의 땅인가. 미국에서 여성 컴퓨터 관련 인력이 25%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조사는 이런 전제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1991년보다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컴퓨터 산업이 싹트기 시작한 1960년대에 견주면 반토막난 수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단순 기능업무에서 고도의 지적인 전문직으로 탈바꿈하면서 ‘똑똑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남성’, 너드들의 전유물로 그 이미지를 재조립하는 과정이 이뤄졌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너드들이 선점한 실리콘 밸리는 ‘브로’들에 의해 성장하고 확산됐다. ‘페이팔 마피아’가 대표적이다.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은 스탠퍼드 재학 시절 그가 창간했던 보수 성향의 학생 신문 <스탠퍼드 리뷰>의 동료들을 페이팔 창업에 대거 끌어들였다. 틸과 동료들은 자신들이 철저히 ‘능력주의’로 인재를 뽑는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실상은 전부 남성이었고, 나이도 비슷했으며, 학력 수준도 대동소이했다. 인맥과 소개는 그들이 추구하는 “동일한 세계관”에 가장 손쉽게 도달하는 방식이었다. 페이팔의 원년멤버들은 페이팔을 떠난 뒤에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여러차례 성공신화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실리콘 밸리의 신생기업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브로’ 문화는 엘리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다가 아니었다. 잘나가는 창업자들은 주 80시간의 격무에 시달린 직원들을 비행기에 태워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 클럽으로 데려갔다. 따라가지 않는 여성들은 왕따가 됐고, 따라간 여성들은 성적 농담의 대상이 됐다. 이같은 성차별적 조직문화에서 살아남았거나 직접 기업을 차려 스스로 최고경영자가 된 여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98%에 이르는 남성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공공연히 자신의 저택 온천에서 투자회의를 연다. 이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 마약섹스파티는 큰 손들의 사교클럽으로 유명하다. 이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서는 수억달러를 쥐고 흔드는 투자자와 눈도장 한번 찍기 쉽지 않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실리콘 밸리의 현실이다. 미세하지만 변화는 있다. 저자는 비록 절반의 성공이지만 기술직 여성을 늘리기 위해 채용방식을 바꾼 구글, 여성 채용을 40%까지 늘린 스타트업 ‘슬랙’, 셰릴 샌드버그 등 유리천장을 깬 여성들의 노력을 조명한다. 다음 세대의 혁신은 다양성의 확산을 통해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믿음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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