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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국, 믿고 싶은대로 믿는 사람들의 세계

등록 2018-07-12 20:06수정 2018-07-12 20:44

‘트럼프 시대’ 진단하는 두 권의 책
미국의 비합리적·비과학적 태도 지적
노동자 계급에 등돌린 민주당 비판도
판타지랜드
커트 앤더슨 지음, 정혜윤 옮김/세종서적·2만5000원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미국 민주당의 실패에서 배우기
토머스 프랭크 지음, 고기탁 옮김/열린책들·1만7000원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는 미국의 주류 언론을 ‘멘붕’ 상태에 빠뜨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확신했던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사태 앞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점 등, 예측과 결과 사이의 낙차를 메꾸기 위한 여러 해명이 나왔지만 가장 핵심적인 설명은 이런 것이 아닐까. ‘트럼프 당선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미국은 어쩌다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담은 미국 저자들의 책 두 권이 동시에 번역돼 나왔다. 문화비평가 커트 앤더슨의 <판타지랜드>(원제 Fantasyland)와 언론인 겸 역사학자 토머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원제 Listen, Liberal: Or, What Ever Happened to the Party of the People?)은 서로 다른 결과 맥락에서 트럼프 당선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미국 정치·사회에 관한 책들이지만 한국적 맥락에서도 새겨 들을 얘기가 적지 않다.

“미국인 중 3분의 2는 ‘말 그대로 진짜 천사와 악마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활약 중’이라 믿고, 적어도 절반은 인격신이 지배하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완전히 확신한다. 또한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과학자와 정부, 언론인들이 작당하여 벌인 거짓 농간이라 믿는다.”

<판타지랜드> 서문에 나오는 이 대목은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인들의 ‘어리석음’ 때문임을 강조한다. 사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하고, 주관적 신념으로 과학을 대체하려 하며, ‘선한 우리 편’을 위협하는 적들의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음모론에 쉽게 빠져드는 미국인들의 특성이 트럼프 당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미국적 어리석음의 연원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까지 끌어올린다. 구교의 부패와 타락에 맞선 루터의 혁신에 뿌리를 둔 개신교는 개인의 자유와 믿음을 강조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루터의 후예들은 구교의 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제가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믿는 최대한의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지적 자유라는 계몽주의의 이상 역시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상대주의로 변질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엄연한 현실과 과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환상에 안주하는 ‘환상 기반 공동체’로 치달았다는 것. 책 제목 ‘판타지랜드’는 이처럼 객관적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비합리적·비과학적 믿음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가리킨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개성 가득한 인물의 대통령 당선을 초래한 미국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들여다본 책 두권이 번역돼 나왔다. 사진은 대선 뒤 처음으로 지난해 1월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기자들과 설전을 주고받는 모습. 뉴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라는 개성 가득한 인물의 대통령 당선을 초래한 미국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들여다본 책 두권이 번역돼 나왔다. 사진은 대선 뒤 처음으로 지난해 1월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기자들과 설전을 주고받는 모습. 뉴욕/AP 연합뉴스

세일럼의 마녀 사냥, 종말론 유파들의 거짓 구원, 각종 만병통치약, 마술과 프로레슬링, 60년대 히피와 신비주의, 디즈니랜드와 라스베이거스, 유에프오와 외계인, “마법적 사고의 극단적 버전인” 베스트셀러 <시크릿>과 가상현실, 비디오게임과 인터넷 기반 가짜 뉴스까지… <판타지랜드>는 “막장으로 흘러온 미국사”의 커다란 흐름과 세부 항목들을 요령 있게 한 줄로 꿰어 설명한다. 지은이는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 판타지랜드의 신”이며 “그에 관한 설명은 사실상 이 책을 요약해주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단언한다.

<판타지랜드>의 지은이가 트럼프의 당선을 이끈 미국인들의 주요한 특성으로 전문가 혐오를 드는 데 반해,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은 트럼프 당선으로 귀결된 민주당의 실패 배후에 오히려 전문가들이 있다고 본다. 한국에도 번역된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프랭크는 미국 민주당의 최근 40년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민주당이 자신의 기반인 평등주의와 노동자 계급을 등지고 백인 중상층 출신 전문직 종사자들로 지지 기반을 옮겨 가는 바람에 ‘민중’의 지지를 잃은 것을 가장 커다란 패인으로 든다.

그는 특히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집권기 민주당의 ‘변질’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데, 이 두 대통령과 그 정부가 말로는 평등과 복지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자본가와 전문가 계급에게 아부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음을 구체적·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공화당이라는 주적에 맞설 상대가 자신들뿐이라는 오만, 중상층 전문가와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택해도 노동자 계급은 언제까지나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착각이 트럼프 당선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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