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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본으로 읽는 하버마스-루만 논쟁

등록 2018-07-12 20:07수정 2018-07-12 20:52

70년대 두 사회학 대가가 벌인 논쟁
루만의 ‘체계이론’ 둘러싼 치열한 토론
40여년 지나 우리말 번역본 나와
사회이론인가, 사회공학인가? 체계이론은 무엇을 수행하는가?
위르겐 하버마스·니클라스 루만 지음, 이철 옮김/이론출판·3만9000원

20세기 지성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논쟁 가운데 하나인 위르겐 하버마스(1929~)와 니클라스 루만(1927~1998) 사이의 논쟁을 담은 책이 40여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유명한 논쟁은 1969년 여름 학기에 하버마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 개설한 세미나에서 루만이 ‘사회학의 기본 개념으로서의 의미’란 자신의 논문을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버마스는 이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담은 논문들을 함께 묶어서 출간하자고 루만에게 제안했고, 루만은 재반박이 가능하다는 보장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 이렇게 나온 글들을 묶어서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가 1971년 펴낸 책이 <사회이론인가, 사회공학인가? 체계이론은 무엇을 수행하는가?>이다.

그동안 우리말 번역본이 없다가 최근에야 나오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책이 나온 뒤 하버마스는 “루만과의 논쟁은 이미 해묵은 것이 됐다”며 이 책의 재인쇄와 외국어 번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빠르게 번역본을 펴냈던 일본에서만 번역본이 나와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2015년 주어캄프 출판사가 한국의 출판사에 판권을 파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참에 하버마스를 설득해 뒤늦은 허락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루만 연구와 번역에 몰두해온 이철 동양대 교수(행정경찰학부)가 우리말로 옮겼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한겨레 자료사진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한겨레 자료사진

두 학자의 논쟁은 뒷날 각각 두 학자를 대표하는 ‘비판이론’(하버마스)과 ‘체계이론’(루만)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사회학 구상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는데, 완성된 저작의 형태가 아닌 논문을 주고받으며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그 중심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논쟁은, 우선 루만이 기존 사회학을 쇄신할 새로운 이론으로서 자신의 ‘체계이론’의 구상을 제시한 데 대해 하버마스가 비판을 가하고 루만이 또다시 이를 반박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때문에 루만의 ‘체계이론’의 내용 자체가 논쟁 전체를 이끌고 가는 핵심이 된다. ‘공론장’, ‘상호주관성’, ‘의사소통행위’ 등 비교적 일찍부터 국내에 알려졌던 하버마스의 이론과 달리, 루만의 이론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논쟁의 첫 단추를 꿴 ‘사회학의 기본 개념으로서의 의미’와 그 배경을 설명해주는 논문 ‘전체 사회 분석 형식으로서의 현대적 체계이론’에서, 루만은 이분법 등으로 세계를 도식화하는 데 익숙해진 기존의 사회이론이 갈수록 분화되고 고도로 복잡해지는 전체로서의 ‘사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루만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복잡성을 척도로 삼는 ‘체계이론’이 필요하며, 그 기본 개념으로서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의미’는 철저하게 기능주의적 개념으로, 흔히 생각하는 개별적인 인간 주체의 행위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다른 체험의 가능성들의 총체 속에서 ‘(차이)동일성’(Einheit)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처리하는 “인간 체험의 질서 형식”이다. 이는 주체의 행위를 중심으로 삼아 한정적으로 규정된 사회만을 파악하는 기존 사회학에서 벗어나, 높은 복잡성과 우연성을 고려하는 사회학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의미는 상호주관적 타당성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며 매개체인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루만이 주체를 배격한 의미 개념을 체계이론에 동화시키려 한 시도에 대해, 그는 “주체 없는 구조들”을 만들어내는 개념화라고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의미’의 의미는 상호주관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데 있기 때문에, “자아의 정체성(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사회)은 인식의 구성이론의 기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행위의 소통이론의 기본 개념으로서 발전되어야 하는 용어들”이라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모습. 출처 volltext.net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모습. 출처 volltext.net

전체적으로 볼 때, 하버마스는 루만의 ‘체계이론’이 ‘주체 없는 구조’만을 앞세우는 ‘사회공학’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런 인식은 그가 직접 붙인 책의 제목 ‘사회이론인가, 사회공학인가?’에서도 드러난다. “루만의 ‘체계이론’은 오늘날 실천적인 질문들을 처음부터 기술적인 질문들로서 정의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로운 공적 토론을 벗어날 수 있는, 이른바 테크노크라트 의식의 최선의 상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세계 복잡성 환원을 사회과학적 기능주의의 최고 관련 지점으로서 정당화하겠다는 시도 뒤에는 지배 순응적인 문제제기가 은폐되어 있다”고도 비판한다.

반면 루만은 이런 대립구도를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하버마스가 붙인 책 제목에 ‘체계이론은 무엇을 수행하는가?’라는 부제를 덧붙인 데에서 루만의 관심사가 오직 자기 이론을 벼리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버마스를 반박하는 마지막 논문에서는 제목 속 “‘또는’을 ‘또는’이 아닌 ‘그리고 또한’의 의미로, 물음표를 불확실성의 상징으로 읽는다”고도 밝힌다. 되레 루만은 하버마스의 비판 속에서 이분법, 단순화, 정치화 등의 어떤 경향을 읽어낸다. “사회는 너무 빨리 바뀌어서, 보수 세력들은 기회주의자들로서만 유지될 수 있는 반면, 좌파들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이상들을 보전하며 보수적이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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