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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독·왜독·양독에 만신창이된 우리말 남기고자 썼어요”

등록 2018-07-17 19:26수정 2018-07-17 22:10

[짬] 소설 ‘국수’ 5권 완간한 김성동 작가

김성동 작가가 17일 소설 <국수> 완간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 솔출판사 제공
김성동 작가가 17일 소설 <국수> 완간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 솔출판사 제공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71)이 1991년 신문 연재를 시작했던 소설 <국수>를 27년 만에 전5권으로 완간했다. 작가의 고향인 충남 보령 등 내포 지방을 중심 무대로 삼아,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에서부터 1894년 동학농민전쟁 전야까지 10여년간 각 분야 예인들과 인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여느 작가들이 쓰지 않는 고유어와 토속어를 적극 부려 쓰는 김성동 특유의 ‘조선 문체’가 두드러진다.

작가는 <국수>와 더불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조선말’을 모아 뜻풀이를 해놓은 260쪽 가까운 단행본 <국수사전>을 따로 내놓았다.

1991년 신문연재 27년만에 마무리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 10여년 배경
바둑 비롯 각분야 예인·고수 이야기
조부에게 한학 배운 자전적 체험 담아

작품속 조선말 뜻풀이 ‘국수사전’도 펴내
“국어사전조차 일본 것 베낀 나라” 탄식

김성동 작가. 사진 솔출판사 제공
김성동 작가. 사진 솔출판사 제공
“‘찔레꽃머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찔레꽃이 피는 음력 3월 말, 모내기철을 이르는 우리말이죠. 이 아름다운 말이 어느 국어사전에도 안 나옵니다. ‘처녀총각’에 해당하는 우리말 ‘꽃두레’ ‘꽃두루’도 마찬가집니다. 제 어릴 적 집에서 노상 쓰던 이런 말들이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우리말은 한독(漢毒)·왜독(倭毒)·양독(洋毒) 삼독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짓밟히고 버려진 우리말을 저라도 챙겨서 남겨 놓자고 쓴 게 소설 <국수>입니다.”

17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성동은 “‘국수’는 바둑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예술적 재주가 뛰어난 이에게 민중이 바치는 꽃다발이었다. 의술이나 소리, 그림, 심지어는 싸움을 잘해도 ‘국수’라고 했는데, 지금은 바둑에만 이 말이 남아 있다”며 “제 소설에서도 바둑이 중요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국수에 해당하는 뛰어난 이들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열네살 나이에 이미 군 단위는 물론 도 단위에서도 바둑으로 겨룰 자가 없는 경지에 오른 양반가 자제 김석규, 석규 집안의 노비 출신으로 명화적이 되는 천하장사 천만동, 선승 백산노장과 불교비밀결사 당취를 이끄는 철산화상, 동학접주 서장옥과 그의 복심 큰개, 김옥균의 정인인 기생 일매홍 등 <국수>의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수’들로 등장한다. 군란과 정변, 농민전쟁 같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이 바탕에 깔리지만, 그런 사건과 정치사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말과 삶, 복식과 습속, 그리고 마음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복원해 낸 박물지요 문화사, 심성사에 가까운 소설이다. <국수>는 신문 연재를 거쳐 1995년 전체 4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작가는 이번에 5권을 새로 쓰고 앞 1~4권도 대폭 개작해 전5권으로 완간해 내놓았다.

<국수>는 소년 석규가 선승 백산노장을 상대로 바둑을 두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이 장면에서 선승이 하는, “유불이 상종하고 노소동락이어늘”이라는 말은 단지 석규와 노승 사이의 관계만을 이르지 않고, 김성동의 정신적 뿌리와 지향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부친이 남로당에 가담했다가 처형된 뒤 할아버지 밑에서 유학을 배우던 김성동은 고교 3학년이던 1965년에 입산했다. 그러나 1975년 불교계의 치부를 들춰낸 중편 ‘목탁조’로 종교 관련 주간지 현상공모에 당선한 일 때문에 승적을 박탈당하고, 바둑잡지 기자를 거쳐 전업작가가 되었다. 역시 <국수> 앞부분에서 “밥이 어디에 있는가?” “밥이야 있지. 다만 나눠먹지 않으려고 하니까”라 말하는 실천적 승려 철산화상이 김성동의 남로당 부친을 연상시킨다면,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날 리 없고 봉생봉(鳳生鳳)이요 용생용(龍生龍)”이라는 석규 조부의 말씀은 김성동 자신이 할아버지한테 듣고 자랐던 탄식이었다. “언어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말과 문장이 아니라는 건 사유구조도 조선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지금은 문학작품까지도 우리 문장이 아니라 서구식 복문구조 일색입니다. 패륜적·범죄적 소설이 난무해요. 내용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언어와 문장, 문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어사전’이 없는 나라예요. 국어사전은 일본 것을 베낀 것이고, 이북에서는 서울 것을 베꼈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이것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작가의 탄식이 길고 깊어졌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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