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지음/루아크·1만8500원 제주도가 주는 즐거움은 화수분 같아서 맛집기행도 좋고 자전거 완주나 올레길 트레킹도 알차고, 그도저도 안 되면 그저 바다 보며 멍때리기도 괜찮다. 여기 제주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이 하나 추가됐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개발시기까지 들어선 근대건축물을 통해 제주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러일전쟁 시기 발틱함대의 동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은 등대, 일본 거주민들을 위한 주택,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 닦은 비행장과 오름 곳곳에 파놓은 동굴진지, 4·3항쟁 때 주민들을 한곳에 몰아넣기 위해 세운 4·3성, 한국전쟁 당시 들어선 제1훈련소와 병원·교회 등 부속시설, 피난민주택, 중국군 수용시설 등을 돌아보며 강제동원·학살·전쟁 등 제주 사람들이 겪은 소외와 배제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다크 투어리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비박사’ 석주명이 열정을 불태웠던 제주대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의 역사, 값싸고 안전한 주택을 보급하기 위해 아일랜드 신부가 고대 도시의 건축을 모티브 삼아 보급한 ‘이시돌식 주택’(테쉬폰 주택)의 창의성,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혹시 임시정부 청사로 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주도청사의 우아한 아름다움, 지금은 ‘이중섭거리’의 지붕 없는 공연장으로 남아 있는 서귀포관광극장의 추억 등 곱씹을 만한 소재가 널려 있다. 제주도에서 기억해야 할 건축가들의 이름도 반갑다. 해외유학파 근대건축가 중 한명인 김태식, 건축의 지역성에 주목했던 김한섭 등이다. 물론, 제주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제주대 본관 등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던 김중업의 자취는 각별하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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