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전10권)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아르테·각 권 2만9000원~3만5000원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사진)의 뤼팽 시리즈는 추리문학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셜록 홈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기존 추리소설이 탐정을 주인공 삼아 범인을 추적해가는 방식이었던 반면, 뤼팽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자리를 도둑이 차지한다. 뤼팽을 가리키는 ‘괴도신사’라는 수사는 신출귀몰할 도둑이자 신사의 면모를 지닌 이 매력적인 주인공의 복합적 성격을 말해준다.
1905년 발표된 이 시리즈의 첫 단편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두번째 단편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에서 보듯, 주인공인 도둑이 붙잡히고 구금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도 이채롭다. 뤼팽은 특유의 변장술과 연기력으로 감옥에서 유유히 탈출하거니와,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저지를 범행을 예고한 다음 철통 보안을 뚫고 그 범행을 성사시키는 데에서 보이는 자신감과 능력도 독자를 매료시켰다. 작가 르블랑은 이 시리즈의 첫 단편집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1905)이 큰 성공을 거두자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의 탐정물 주인공 셜록 홈스와 뤼팽의 대결을 다룬 <뤼팽 대 홈스의 대결>(1908)을 두번째 작품집으로 출간해 도일의 항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기암성> <813>을 비롯한 장편 17편과 중단편 39편, 희곡 5편 등 뤼팽 시리즈 전체를 두툼한 단행본 10권에 갈무리한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이 나왔다. 뤼팽 ‘덕후’라 할 번역가 성귀수가 원고지 3만장 분량을 혼자서 한국어로 옮긴 열정과 끈기의 산물이다. 성귀수는 일찍이 2003년에 20권짜리 뤼팽 전집을 낸 바 있는데, 이번 전집에는 그 뒤 추가로 확인한 장편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과 단편 둘, 희곡 넷 등 일곱 작품을 추가했다. 적어도 현재까지 확인된 뤼팽 시리즈 전 작품을 망라한, “세계 유일의 판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프랑스어 원본은 유실된 채 영역본만 남아 있는 단편 ‘부서진 다리’, 프랑스의 ‘아르센 뤼팽의 친구들 협회’ 회보에 실린 두 희곡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과 ‘이 여자는 내꺼야’ 등이 추가된 작품들이다.
얇게는 600쪽 가까이에서 두껍게는 1000쪽 가까이에 이르는 전집 10권은 발표 순서대로 작품을 묶었다. 또 발표 당시 실렸던 삽화 370여 컷도 모두 되살려 원작의 느낌과 분위기를 맛보도록 했다. 모든 작품 앞부분에는 ‘작품 정보’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1909년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르 주르날>에 기고한 ‘추리소설론’과 1911년 일간지 <엑셀시오르>에 실린 르블랑 인터뷰 둘, 그리고 옮긴이 성귀수가 뤼팽과 나눈 가상 대담, 심지어는 작품을 근거로 재구성한 뤼팽의 연보까지 실려 뤼팽 덕후들을 즐겁게 한다.
전집 1권 앞부분에 실린 ‘역자의 말’은 “무엇보다 아르센 뤼팽을, 그 태양처럼 빛나는 열정과 자신감뿐 아니라 고독과 실존의 그림자까지도 사랑하여, 그가 펼쳐 보인 파란만장한 모험들 하나하나에 흔쾌히 동참해온 친구들”을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뤼팽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이 문장은 ‘친구들’ 이전에 옮긴이 성귀수가 자신을 묘사하고 평가하는 글로 읽힌다.
최재봉 기자, 사진 아르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