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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두 달에 한 권씩… 철학자 고병권의 ‘자본 읽기’

등록 2018-07-26 19:59수정 2018-07-26 21:07

천년의상상 출판사와 함께 하는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
2년 동안 격월간 책 출간에 강연까지

“과학 넘어선 비판”, “모순보다 역설”
고병권이 읽는 ‘자본’은 어떤 모습?
다시 자본을 읽자
고병권 지음/천년의상상·1만3900원 (전체 12권 격월간 발행)

평생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공부를 이어온 철학자 고병권(47·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그동안 많은 책을 써냈다. 그런데 의외로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본격적인 저술은 한 권도 펴낸 적이 없다. 애초 대학에서 화학과를 다니다가 마르크스 공부를 하겠다며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마르크스와 니체, 스피노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꼽아왔던 그다. 그랬던 고병권이 드디어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을 “다시 읽는” 책을 펴낸다. 그것도 출판계에 전례 없던 새로운 시도와 함께. <월간 정여울> 프로젝트로 ‘단행본을 월간 발행한다’는 실험을 펼치고 있는 출판사 천년의상상은 오는 8월부터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앞으로 2년 동안 격월간으로 열두 권의 책을 펴내고, 그 사이사이에 열두 차례의 강연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강연은 동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으로도 제공한다. 지난주부터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함께 정기독자라 할 수 있는 ‘북클럽’ 독자들을 모집하는 ‘북펀드’도 시작했다.

8월부터 2년 동안 격월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낸 책을 펴내고 강연을 펼치는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에 돌입한 철학자 고병권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세미나실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8월부터 2년 동안 격월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낸 책을 펴내고 강연을 펼치는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에 돌입한 철학자 고병권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세미나실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렇게 색다른 도전을 감행할 수 있는 바탕에는 고병권이라는 필자의 힘이 있다. 고병권은 오랫동안 ‘수유너머’를 비롯해 이른바 ‘제도권’에서 벗어난 공부 공동체를 터전으로 삼아 세상을 궁구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벼려왔다. 때문에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3), <언더그라운드 니체>(2014) 등 주전공이랄 수 있는 니체의 사상을 파고드는 저작뿐 아니라 <민주주의란 무엇인가>(2011), <살아가겠다>(2014), <철학자와 하녀>(2014) 등 삶의 현장과 앎의 추구가 하나로 녹아든 저작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자본>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고병권이 읽어내는 <자본>”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세미나실에서 만난 고병권은 “마르크스와 <자본>에 대해 온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내가 마르크스에 대해 감탄하고 놀라는 대목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주목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번 책에서는 주로 그런 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8월에 나오는 1권은 <자본>의 배경과 제목, 서문 등을 다룬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고병권의 독특한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마르크스의 ‘과학’이라 부르지만, 나는 <자본>에는 ‘과학’과 다른 차원으로 ‘비판’이 존재하며 여기에 <자본>의 위대함이 있다고 본다. (…) 한 과학, 한 학문에 대한 비판은 그것의 한계, 그것의 불가능, 그것의 파산 장소까지 가는 것이다.” 고병권은 초판 서문에 ‘현미경’과 페르세우스의 ‘투구’ 비유가 나오듯, <자본> 전체에서 ‘본다’, ‘보인다’는 말이 중요하게 쓰인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조명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조명 아래에서 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알 수 있느냐는 것이죠.”

멕시코 출신의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멕시코시티 국립궁전 벽화 속 마르크스. 천년의상상 제공
멕시코 출신의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멕시코시티 국립궁전 벽화 속 마르크스. 천년의상상 제공

마르크스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 따지기보다도 사물의 관계를 비추는 조명 그 자체, 곧 ‘입장’을 중시했으며, 이 때문에 “‘과학’보다 더 멀리 나아가는” ‘비판’을 자신의 고갱이로 삼았다는 것이 고병권의 풀이다. “마르크스는 ‘왜 노동자의 주사위는 불리한 눈만 내놓는가’ 묻는데, 이것은 주사위뿐 아니라 주사위가 던져지는 공간을 읽어내려는 그의 시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과학이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그것을 비판하는 자신의 입장까지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죠.” 그동안 그가 해왔던 푸코, 칸트, 니체에 대한 공부, 특히 니체의 ‘관점주의’나 ‘앎에의 의지’ 개념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헤겔이 마르크스와 <자본>에 끼친 영향에 대한 풀이도 흥미롭다. 그는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명백히 변증법적인 서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후기에서는 스스로 “헤겔 특유의 표현방식을 흉내냈다”고까지 말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것은 일종의 ‘패러디’라는 것이 그 나름의 풀이다.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헤겔식 변증법을 구사한 대목들을 살펴보면, ‘화폐 물신주의’ 분석 등 모두 ‘자본의 증식’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런데 ‘자본의 증식’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노동의 착취’죠.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가상과 허위의 형성을 기술하는 대목에서만 마치 ‘패러디’하듯 헤겔을 끌어온 것이 아닐까요?”

8월부터 2년 동안 격월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낸 책을 펴내고 강연을 펼치는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에 돌입한 철학자 고병권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세미나실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8월부터 2년 동안 격월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낸 책을 펴내고 강연을 펼치는 <다시 자본을 읽자> 프로젝트에 돌입한 철학자 고병권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세미나실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특히 고병권은 헤겔식의 ‘모순적’ 변증법과는 다른, 마르크스식의 ‘역설적 변증법’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헤겔식 변증법에서는 모순적 상황이 한 차원 높은 논리적 고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서는 양쪽 모두의 옳은 주장이 양립하면서 논리가 실패하는 ‘역설’ 또는 ‘이율배반’의 상황이 더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다. ‘표준노동일’을 둘러싸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의 근거를 대며 다른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라 한다. 이렇듯 논리적인 해결이 불가능할 때 ‘힘’이라는 재판관이 등장한다. “자본의 운명에서 핵심적인 것은 논리가 아닌 힘이다.”

이런 역설 속에서 고병권은 <자본>을 관통하는 마르크스의 핵심 정신을 본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체제 구성의 원리를 살피면서 그것이 해체되는 원리를 함께 봤다.” 마치 ‘로마가 가장 강할 때가 로마가 가장 약할 때’인 것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주의가 깨질 위기 또한 커진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고병권은 “마르크스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강력해지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고 말한다. 결국 자본주의를 이겨내는 것은 현존 체제 안에 잠재해 있으며, 그것은 일정한 방향의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은 현실 속의 투쟁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고병권은 이전부터 꾸준히 자신의 공부가 “마르크스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음을 말해온 바 있다. 이제 되돌아올 수 없는 2년 동안의 ‘대장정’만이 남았다. 고병권은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 가끔 후회될 정도로 부담스러운 프로젝트”라며 한숨을 쉬면서도, “이것이 나 스스로를 정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자본>은 신선하고 훌륭하고 좋은 재료이지만, 어쨌든 제가 내놓을 것은 ‘고병권의 요리’입니다. 제 요리가 ‘마르크스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네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인 <자본>을 혁명 동지였던 빌헬름 볼프에게 헌정했다. 마르크스에게 볼프는 친구이자 ’프롤레타리아의 선봉투사’였다. 천년의상상 제공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인 <자본>을 혁명 동지였던 빌헬름 볼프에게 헌정했다. 마르크스에게 볼프는 친구이자 ’프롤레타리아의 선봉투사’였다. 천년의상상 제공

노동자에게 <자본>을 헌정한 마르크스처럼

“‘격월간 열두 차례’라고 하니, ‘너무 무리하게 책을 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급하게 공부한 것을 막 써내는 책은 결코 아닙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 나름대로 공부하고 준비해온 내용을,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병권의 공부는 늘 마르크스를 향해 있었다. 2003년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펴냈을 때에도 “이제 마르크스로 가는 길을 가겠다”고 했고, 2014년 <언더그라운드 니체>를 낸 뒤에도 “모든 근거들이 몰락하는 곳”으로서 ‘언더그라운드’ 개념으로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결정적으로는 2016년 연구공동체 ‘우리실험자들’에서 <자본> 강의를 했던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뼈대가 됐다. 그 강의를 빼놓지 않고 들었던 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가 “책으로 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지만 장장 2년 동안 매달 책 내고 강연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일 리 없다.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이란 책을 두고 그토록 머리를 썩였던 이유가, 또 프랑스어판을 낼 때 ‘분책’을 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이 책을 노동자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다시 자본을 읽자> 1권에서 그는 <자본>이 마르크스의 혁명 동지였던 빌헬름 볼프(1809~1864)에게 헌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짚으며, “마르크스는 <자본>의 독자로 노동자를 상정했으며, <자본>을 당대의 노동자들이 사용할 무기로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쓰고 그냥 그것을 뿌리는 데에 그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르크스처럼 수신인이 누구라고 콕 찍을 순 없지만, ‘좋은 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책’을 써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 대표가 제안한, 정기적으로 책을 내고 독자와 만나는 일이 아무리 부담되더라도 꼭 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틈틈이 ‘왜 남의 인생에 이렇게 힘든 일을 줬느냐’ 투덜대긴 하지만요.”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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