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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추천글 써준 노회찬 의원에게 술 한잔 사려 했는데…”

등록 2018-07-29 18:08수정 2018-08-05 20:12

【짬】 운동권 출신 ‘클래식 저술가’ 진회숙씨

진회숙 작가는 지난 25일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았다. “민노당 진보신당 노동당을 거쳐 몇달 전에 정의당 당원이 됐죠. 그동안 내가 찍은 사람이 한번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요.” 이런 말도 했다. “보수든 진보든 우리 사회는 아직 건전한 민주시민 의식이 없어요. 같이 운동한 사람 중에도 내가 노무현을 비판했다고 의절한 친구가 있어요. 대통령의 직무가 잘못 됐다면 비판할 수 있어야죠.”
진회숙 작가는 지난 25일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았다. “민노당 진보신당 노동당을 거쳐 몇달 전에 정의당 당원이 됐죠. 그동안 내가 찍은 사람이 한번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요.” 이런 말도 했다. “보수든 진보든 우리 사회는 아직 건전한 민주시민 의식이 없어요. 같이 운동한 사람 중에도 내가 노무현을 비판했다고 의절한 친구가 있어요. 대통령의 직무가 잘못 됐다면 비판할 수 있어야죠.”

“운동권과 연결 안 됐으면 지금은 잘 나가는 남자 만나 타워팰리스에서 살고 있겠죠. 하하.”

최근 <우리 기쁜 젊은 날-응답하라 1975-1980>(삼인)을 펴낸 음악평론가 진회숙씨 얘기다. 그는 2002년 첫 책 <클래식 오디세이>를 낸 이래 30여 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서양 고전음악의 속살을 대중 눈높이에서 풀어쓴 글들이다. 28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 한 카페에서 만난 저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중학생 때부터 꿈은 작가였어요. 앞으론 음악평론가나 음악칼럼니스트가 아니라 폭넓은 주제로 책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어요. 음악책은 더 쓰고 싶지 않네요.” 지금 목표는 여행작가란다. 박학다식하면서 위트도 넘치는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의 책처럼 재밌는 여행기를 쓰고 싶단다. “여행을 위해 이번 학기부턴 고정 강의도 하지 않아요. 특강만 합니다. 집 판 돈으로 여행을 다닐 겁니다. 지금부터 저에게 휴가를 주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이번 책은 음악과 예술을 주제로 하지 않은 첫 저술이란다. “(이 책이) 나를 작가로 발돋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책은 이화여대 음대 1학년이 된 1975년부터 전두환이 등장한 1980년까지 저자가 겪은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그는 당시론 매우 희귀한 음대생 운동권이었다.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허영심만 가졌어요. 투사가 아니고 일종의 관찰자였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고문의 고통도 겪었다. 반유신 유인물을 만들어 이대 학생회관 2층 난관에 숨어 뿌리기도 했다. 야학 동료가 수배로 쫓기자 교회 성가대석까지 데리고 다니며 보호해줬단다. 구속 경력이 드러나 음악 강사로 일하던 학교에서 쫓겨난 뒤엔 생계를 위해 가짜 서류로 위장취업을 한 일도 있다. 성악 특기를 살려 1978년 김민기 노래굿 <공장의 불빛> 테이프 녹음과 1980년 공해추방 마당극 <삼천리 벽폐수야>에도 참여했다.

유신 때 학생운동 체험 다룬
‘우리 기쁜 젊은 날’ 펴내
야학에 긴조구속, 위장취업까지

“앞으론 여행작가로 살터
동생 은숙·중권과 연락 거의 안해
가족애 강요도 폭력이죠”

<우리 기쁜 젊은 날> 표지.
<우리 기쁜 젊은 날> 표지.
“지적 허영심으로 충만한 기간이었어요.” 이 말엔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3학년 되던 1977년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가 하던 야학 교사로 참여하면서 운동권에 첫발을 디뎠다. 이때 야학 강사 공부 모임으로 시작해 경제사, 한국근대사, 경제학, 민요연구 등 주제를 바꿔 다양한 공부 모임을 이어갔다. 이런 학구열은 지금도 식지 않았다. “저를 포함해 세 명이 우리 집에서 매달 문학·예술·사회 공부 모임을 하고 있어요. 운동권 동료들이죠. 남편은 참여는 하지 않고 술 안주를 준비해요 하하.” 남편(정연도)을 만난 것도 판소리 스승으로 모신 게 인연이 됐단다.

왜 ‘우리 기쁜 젊은 날’인가? “다들 서슬 퍼런 유신 시절로 기억하지만 그것도 포괄해 젊은이로서 대의를 위해 청춘을 불사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시기였어요. 행복하고 찬란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야학을 하면서도 노동자보다는 공부에만 신경을 썼고 학교를 때려치울 각오도 하지 못한 건 부끄럽다”고 했다.

성악가의 꿈은 대학 3학년 때 야학을 하면서 포기했단다. “성악이 시시해 보였어요. 그때 대한민국 상황에서 성악이 어떤 도움이 될까 회의적이었죠.” 하지만 운동권과 만나면서 내면에 잠재해있던 진짜 꿈은 이뤘다고 생각한단다. “중학생 때부터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있게 보였어요. 그래서 소설도 읽고 일기도 썼죠. 잘 쓰면 희열이 느껴졌죠. 그때는 잘 몰랐지만 제 타고난 욕망이 바로 글쓰기였던 것이죠.”

진회숙 작가는 젊은 시절 운동권 학습 모임에서 읽은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가장 앞의 펼친 책은 “40년 전 국내에서 발간된 거의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 관련 도서”라는 <일반경제사요론>(이영협)이다. 뒤의 펼친 책은 1980년 경제학 공부 모임에서 읽었던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이론>이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진회숙 작가는 젊은 시절 운동권 학습 모임에서 읽은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가장 앞의 펼친 책은 “40년 전 국내에서 발간된 거의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 관련 도서”라는 <일반경제사요론>(이영협)이다. 뒤의 펼친 책은 1980년 경제학 공부 모임에서 읽었던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이론>이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책엔 운동권 선배와의 애틋한 연애담도 자세히 적었다. “남편도 다 알고 있어요. 책 뒤쪽에 남편 이야기를 안 쓰려고 했는데 형평성이 맞지 않아 남편 얘기도 넣었죠. 하하.”

그에겐 은숙 중권 중걸 세 동생이 있다. 요즘은 작곡가 진은숙, 미학자 진중권의 언니와 누나로 더 자주 불린다. 막내의 근황을 묻자 잘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 형제들은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요.” 덧붙였다. “친척들은 우리 가족이 자주 안 만난다고 뭐라 해요. 굳이 가족이 친해야 하나요? 부모나 형제, 자식과 그렇게 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을 즐기고 살면 됩니다. 가족애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옷차림을 가지고 참견하잖아요. 왜 남의 인생에 참견하나요.” 그는 가족 간 억압이 회사 등 다른 공간의 억압으로 이어진다며 우리 사회에 개인주의가 뿌리내린다면 개인의 행복감은 80%는 늘어날 것이라고도 했다.

딸 셋 중 큰딸만 대학을 갔단다. “둘째는 호주서 워킹홀리데이(여행 중 취업)를 하고 있고 셋째는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재즈 공부를 하고 있어요. 셋 다 나랑 사고방식이 다 달라요. 넷 사이에 공통점이 없어요. 가정환경이나 교육보단 타고난 천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가 자식 뭐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소용이 없으니까요.”

남다른 ‘진회숙 4형제’의 성장에 기여한 부모의 몫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런 건 없어요. 다만 아버지가 우리 어렸을 때 피아노를 가르친 것은 자식들의 음악적 감성을 키운 데 도움이 됐다고 봐요. 아버지는 독재자였죠. 자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싶어 하셨죠. 지금 살아계셨다면 무지무지 어깨에 힘주고 사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책엔 고 노회찬 의원의 추천 글이 제법 길게 실렸다. “여행 중 추천 글을 봤어요. 원고를 다 읽고 썼다는 느낌을 받아 너무 고마웠죠. 귀국해 술 한잔 사려고 했어요. 내가 존경하는 국회의원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는데....”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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