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권 지음/걷는사람·9000원 이름만 ‘시골밥상’이 아니라, 산 높고 골 깊은 어느 벽촌에서 등 굽은 할머님이 차려 주신 밥을 배불리 먹은 듯하다. 송진권(사진)의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를 읽고 난 느낌. 단순히 시골이 배경이라서만은 아니다. 이즈음 시들에서 만나기 힘든 전통적 가치와 지혜가 정겨운 토속어와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경(情景)이 가히 절창이라 할 만하다. 2004년 등단해 시집과 동시집을 한 권씩 펴낸 바 있는 이 시인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탱자 가시로 살을 발라 먹고/ 이남박에 던진 올뱅이 껍질이 데구르르 구르다 멈춘 데쯤/ 올뱅이 껍질 부딪히는 소리 모이는 데에/ 우리 동네는 있습니다// (…) // 올뱅이 껍질 속 같은 꼬부랑길을 걸어 밭에 가던 할머니가/ 즘잖은 양반이 왜 여기서 이랴 하며/ 길 잘못 든 두꺼비를 물 쪽으로 타일러 돌려보내는 때/ 해바라기는 환하게 불을 켜고 길 밝히고요”(‘우리 동네’ 부분) 올뱅이 껍질이 내비게이션을 대신하고 길 잃은 두꺼비를 위해 해바라기가 환하게 불 밝혀 주는 곳,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 느티나무슈퍼에는 “말매미만큼 늙은 할머니”가 있고, 담배를 사러 간 시인은 “기다랗게 거미줄을 늘여 타고 내려온 거미에게는 막대사탕을/ 유리문 시끄럽게 두들기는 사슴벌레에게 알사탕을 들려 보내고” “막걸리를 마시며 ‘겨’로 끝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이상 ‘느티나무슈퍼’)는다. 그 동네의 집 안 풍경은 어떨까.
송진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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