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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재즈, 통합과 민주주의의 음악!

등록 2018-08-09 19:11수정 2018-08-09 19:31

재즈 선언
윈턴 마설리스·제프리 C. 워드 지음, 황덕호 옮김/포노·1만6000원

“난 재즈가 싫어요.” 영화 <라라랜드> 속 미아(엠마 스톤)의 말에 세바스천(라이언 고슬링)은 그를 어느 재즈 클럽으로 데리고 간다. “사람들이 재즈를 싫다고 말하는 건 재즈의 역사나 뿌리를 몰라서 그래요. 재즈는 뉴올리언스 싸구려 여관에서 탄생했죠. 장소는 좁은데 사람들은 넘쳐나지, 서로 언어가 달라서 말은 못하지, 그래서 태어난 소통법이 재즈였어요.”

세바스천은 진지한 얼굴로 재즈 설파를 이어간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해요. 저 친구들 보세요. 저 색소폰 연주자요. 방금 곡을 가로채서 멋대로 가지고 놀아요. 다들 새로 작곡하고 편곡하고 쓰면서 선율까지 들려주죠. 이젠 또 트럼펫이 할 말이 있군요. 서로 충돌했다가 다시 타협하고 그냥…. 매번 새로워요. 매일 밤이 초연이에요. 진짜 기가 막혀요.”

윈턴 마설리스의 책 <재즈 선언>을 보면서 세바스천을 떠올렸다. 마설리스는 1997년 재즈 음악인 최초로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한 트럼펫 연주자다. 재즈 피아니스트 아버지 아래서 어릴 때부터 재즈를 익혀온 마설리스는 지금껏 쌓아온 재즈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원제를 직역하면 ‘높은 곳으로의 도약-재즈는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마설리스는 단순히 음악적 이론에 그치지 않고 재즈가 우리 삶과 세상을 향해 품은 함의와 교훈까지 확장해나간다.

윈턴 마설리스(왼쪽부터), 빅터 고인스, 헐린 라일리, 위클리프 고든, 에릭 ‘톱 프로페서’ 루이스가 녹음 도중 휴식 시간에 자유롭게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모습. 포노 제공
윈턴 마설리스(왼쪽부터), 빅터 고인스, 헐린 라일리, 위클리프 고든, 에릭 ‘톱 프로페서’ 루이스가 녹음 도중 휴식 시간에 자유롭게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모습. 포노 제공

마설리스는 재즈는 언어라고 말한다.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얘기를 악기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고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만 목소리를 크게 내서는 좋은 재즈 연주가 될 수 없다. 때론 자신이 주도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이가 주도하도록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는 게 재즈다. 마설리스는 재즈의 디엔에이(DNA)와 혈액과도 같은 스윙과 블루스의 개념과 의미를 설명하면서도 이같은 기본 철학을 견지한다.

더 나아가 재즈는 “위대한 통합”의 음악이라고 설파한다.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전세계 모든 인종의 음악인들에게 열려 있다. 악보나 지휘자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 즉흥적으로 상호 침투하며 완성해가는 재즈는 미국의 오랜 숙제인 인종통합과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며,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책을 옮긴 재즈평론가 황덕호는 “윈턴이 제시한 재즈의 메시지는 오래도록 미국의 나침반이 되어야 하지만, 이제 새로운 민주 정부를 세운 희망에 찬 우리에게도 의미를 던져줄 것”이라고 역자 후기에 적었다.

마설리스가 재즈 거장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그들의 대표작을 소개한 대목도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루이 암스트롱의 사운드에는 불행한 일을 당한 이들을 위로해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 아트 블레이키는 반주자로서 독주자들을 지원하는 데 있어 강약의 사용법을 아는 음향 건축의 대가이고, 마일스 데이비스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수정·정돈하고 재포장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코디네이팅의 대가다.

책장을 덮고 나면 재즈는 반대편을 포용하는 가장 유연한 예술 형태이며, 우리에게 존경과 신뢰를 가르쳐준다는 지은이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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