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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로티시즘 문학 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

등록 2018-08-09 19:30수정 2018-08-09 19:48

사르트르와 경합한 노벨문학상 후보
‘킨 이야기’ ‘치인의 사랑’ 등에서
“여자의 살갗과 발이 주는 희열” 그려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전7권)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박연정 외 옮김/민음사·각 권 9800원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는 에로티시즘 문학을 대표하는 일본 작가다. 김춘미 고려대 일문과 명예교수는 “장장 오십오 년 동안 오로지 여자의 흰 살갗과 발이 가져다주는 희열만을 그린 작가”라고 그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만으로 그의 문학 세계의 폭과 깊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분명 페티시즘과 가학 및 피학 등 도착적이기까지 한 성애의 세계를 즐겨 다루었지만, 그와 함께 고전 미학을 아우르는 일본적 탐미주의의 ‘지존’이라 할 법하다. 1964년 노벨문학상 심사에서 사르트르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게 다니자키였으며, 그는 그해를 포함해 여섯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등을 영어로 번역해 가와바타가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은 가와바타가 아니라 다니자키에게 돌아갔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일본 에로티시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과 에세이를 모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이 출간되었다. 사진은 다니자키의 단편소설 ‘문신’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 <욕망의 거미줄-시세이 2>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에로티시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과 에세이를 모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이 출간되었다. 사진은 다니자키의 단편소설 ‘문신’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 <욕망의 거미줄-시세이 2>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민음사의 문고판 시리즈 ‘쏜살 문고’가 전체 10권으로 기획한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다니자키의 대표 소설과 에세이를 부담 없는 부피에 담았다. 등단작 ‘문신’과 영화 <아가씨>의 소년 버전이라 할 ‘소년’, 교실 안의 권력 관계를 다룬 ‘작은 왕국’ 등 단편 셋을 묶은 <소년>, 주체적이고 제멋대로인 여성을 가리키는 ‘나오미즘’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초기 대표작 <치인(痴人)의 사랑>,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하여금 “그저 탄식할 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바치게 한 <킨 이야기>, 칠순 노인과 며느리의 아슬아슬한 성애 놀이를 그린 말년작 <미친 노인의 일기> 등 7권이 먼저 나왔다. 다니자키 고유의 미학관을 담은 에세이 <음예 예찬>과 소설 <여뀌 먹는 벌레> <무주공 비화>는 12월에 출간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예리한 그의 시선에는 사람의 발이 얼굴과 똑같이 복잡한 표정을 가진 것으로 비춰졌는데, 그 여인의 발은 고귀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보석처럼 느껴졌다.”

1910년 등단작 ‘문신’의 이런 문장은 다니자키 성애 문학의 표징과도 같은 ‘발 페티시즘’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킨 이야기>에서 남자 주인공 사스케가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킨을 회고하며 “스승님의 발뒤꿈치는 내 볼보다 더 매끈거리고 부드러웠어”라고 회고하는 장면, <치인의 사랑>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아, 이 발, 이 쌕쌕거리면서 자는 새하얀 아름다운 발, 이것은 확실히 내 것이다”라며, 잠자는 나오미의 발을 쓰다듬는 장면, 며느리의 발바닥을 탁본으로 떠서 석가모니식 불족석(佛足石)을 만들어 제 무덤 위에 놓으려 하는 <미친 노인의 일기>의 노인 등이 한결같이 발 페티시즘에 사로잡혀 있다. 다니자키가 ‘후미코의 발’이라는 단편에서 무려 6쪽에 걸쳐 “보석 같은” 후미코의 발을 묘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 영화 <욕망의 거미줄 - 시세이 2>
일본 영화 <욕망의 거미줄 - 시세이 2>

“내 삶의 보람은 예술을 열애하는 것이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 나는 어디까지나 나를, 나만을 소중히 여기는 에고이스트다.”

다니자키의 이런 예술지상주의, 그리고 비사회적이며 변태적인 에로티시즘은 적잖은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변태적 욕망을 포함한 성애 역시 인간 본성의 중요한 일부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 미학의 발전과 진보에 기여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다니자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한국 소설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영향과 표절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치인의 사랑>에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리석은 사랑에 매달리는 남자의 아래와 같은 태도는 다니자키 미학의 핵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밤의 나오미는 저 더러운 음탕한 여자인 나오미, 많은 남자들한테 끔찍한 별명으로 불리는 매춘부 나오미와 양립할 수 없고, 저 같은 남자는 그저 그 앞에 무릎 꿇고 숭배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고귀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만일 그녀의 새하얀 손가락이 조금이라도 저를 건드린다면 저는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전율을 느꼈을 겁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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