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욱인 지음/휴머니스트·1만9000원 양옥·양장·양복·양품점·경양식…. 한국에 들어온 수많은 신식 문물엔 ‘양’ 자가 붙어 있다. 일본이 받아들이고 변형한 ‘서양’의 번안물이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 전파된 것들이다. 해방 뒤에도 일제가 남긴 ‘양풍’은 고스란히 남았다. 미국 점령군이 진주한 남한에선 사회제도에서부터 의식주, 문화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식민지 번안풍과 신식 미국풍, 전통의 잔존물이 뒤섞여 공존했다. 개발독재와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선 일본식 번안 문물이 다시 한번 우리식 번안을 거치며 재현된 서양, 모방된 창조를 이어갔다. <번안사회>는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의 기원과 양태, 영향을 꼼꼼히 파헤친 책이다. 1960년대 경양식집에서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돈까스, 오므라이스, 고로케 등 세련된 도회풍의 화양절충 요리에는 다꾸앙(단무지)이 반찬으로 나왔다. 나치 독일이 대중선전과 오락용으로 개발한 라디오와 국민방송은 일제의 ‘국책 라디오’로 수용됐다. 락희화학은 국내 최초의 전자회사 금성사와 손잡고 독일산 주요부품을 조립한 국산라디오를 선보였다. 일제의 국민복은 해방 뒤에도 신생활복(1955년)과 국민복(1961년), 1970년대 새마을복으로 변신했다. 이밖에도 국민교육헌장, 이발소 그림, 성경 번역, 서울 청계천 고가도로와 세운상가, 카바레와 버라이어티 쇼, 독재정권이 권장한 국민가요와 서양팝송의 번안가요 등 기묘한 혼종은 차고 넘친다. 지은이는 “식민지 흔적을 확인해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고 정체를 분명히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만 식민지 상흔을 지우”고 불치의 식민지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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