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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뺄셈의 문학사’에서 통일 통합 문학사로

등록 2018-08-16 20:35수정 2018-08-17 16:22

납월북 작가 해금 30주년 학술대회
‘해금’ 아닌 ‘피해자 복권’으로 봐야
북한소설 분석하며 ‘문학통일’ 모색도
‘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8년 7월19일, 당시 정한모 문공부 장관은 납·월북 문인 120여명에 대한 해금 조치를 발표한다. 임화, 이기영, 한설야, 이태준, 박태원, 김남천 등 납북됐거나 월북한 문인들의 작품 출판을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이들의 작품을 남쪽에서 읽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이 금기의 사슬에 묶인 채 풍문으로만 떠돌았던 것.

납·월북 작가 해금 30주년에 맞추어 17~18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학술대회가 열린다. ‘증오와 냉전 의식의 험로를 넘어 다시 평화 교류의 길로’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 행사에는 유임하(한국체대)·천정환(성균관대)·오태호(경희대) 교수 등 국문학자뿐만 아니라 음악·미술·무용 전공 학자들을 포함해 44명이 발표 및 토론자로 참여해 해금 30년의 경과와 함의, 과제 등을 살펴본다.

김성수 성균관대 교수는 ‘재·월북 작가·예술인 ‘해금’ 조치의 연구사·문화사적 의미’라는 발표에서 ‘납·월북자 해금’이라는 명명법부터 재고하자고 제언한다. 우선 ‘납·월북’이라는 표현은 애초에 북쪽이 고향이거나 거주지여서 해방과 분단 뒤 그곳에 남은 재북(在北) 또는 귀북(歸北) 문인들의 선택에 대한 무지 내지는 폭력적인 오해를 수반한다. 심지어는 북한 정권이 들어서기 훨씬 전인 1938년에 숨진 포석 조명희 역시 월북 작가로 낙인이 찍혀야 했다.

‘해금’(解禁)이라는 공안적·시혜적 표현도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1988년 해금 조처가 있기 전부터 금기를 깨고자 하는 수많은 학자·문학인들의 투쟁이 있었으며 정권의 결정은 그에 굴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해금’은 “시민 사회의 저항과 투쟁의 산물로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김 교수는 그와 함께 “월북은 악이고 월남은 선이라 하거나, 월북은 범죄, 월남은 귀순으로 호명하는 것 자체가 중세적 이분법의 산물”이라며 월북 작가든 월남한 작가든 “모두가 분단과 냉전의 피해자이며 문화적 시민권자”인 만큼 “‘피해자 복권’으로 프레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김 교수는 또 30년 전 해금에도 불구하고 “근현대문학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와 조선문학가동맹 출신의 좌파문학은 여전히 정전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한다. 그는 “분단 이후 북한에서 숙청된 재·월북 작가 복권과 문학 복권도 필요하다”며 그와 동시에 “‘한국문학’의 타자로서 ‘북한=북조선=조선문학’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불온한 발상’도 선보인다. 해금 이전 문학사를 ‘뺄셈의 문학사’라 표현하는 그는 “현존하는 남북한 문학 정전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그에 기반한 “통일 통합 문학사”로 나아갈 때 해금의 문학사적 의미가 완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의 발표 ‘북한바로알기 30년 남북문학교류의 명암 되짚어보기’는 김성수 교수의 이런 제언에 대한 화답처럼 읽힌다. 오 교수는 2010년대 현재 북한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소설들을 소개하면서 남북한 문학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만날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가 중국 연변대 도서관의 북한 자료실에서 접한 북한 소설은 서청송의 ‘유봉동의 열여섯집’과 김해룡의 ‘서른두송이의 해당화’,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 세 편이다. 모두 2016년과 2017년 북한 문예지 <조선문학>에 실린 작품들인데, 앞의 둘은 각각 <조선문학>의 2017년과 2016년 우수작으로 뽑힌 작품들이고, 리준호의 작품은 북한 문단에서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지만 “북한 작품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모더니즘적 요소를 지닌 노동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그는 전했다.

오 교수는 또 4·27 정상회담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남북 문화교류 제안들과 관련해 “체제적 우월의식에 기반해 남북 작가들의 문학적 만남을 기획”해서는 곤란하다며 “남한 문인들이 ‘소수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북한문학의 특수성을 껴안는 전향적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 교류 역시 “‘다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진정한 이해와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납·월북 작가 해금 30주년을 맞는 올해 4·27 정상회담 등 화해 분위기가 남북한 통합문학사를 향한 새 진전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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