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학 지음/글항아리·1만6000원 중세 유럽 수도사들이 사순절에 배고픔을 달랬던 ‘흐르는 빵’.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가던 메이플라워호 청교도들이 물보다 귀하게 여겼던 액체. ‘95개조의 반박문’을 쓴 뒤 화형에 처해질 뻔했던 마르틴 루터에게 신념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신의 음료. 많은 연인을 맺어준 사랑의 묘약. 동성애로 감옥에 갇힌 오스카 와일드에게 허락됐던 유일한 기쁨.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집대성한 논문을 작성한 뒤 만취한 술. 이쯤 설명하면 술꾼들의 입에 침이 고일 법하다. 국내 최초의 수제맥줏집을 낸 ‘맥주 전문가’ 백경학이 쓴 <유럽맥주여행>은 책갈피마다 맥주 사랑으로 흠뻑 젖어 있다. 고대 이집트부터 시작된 맥주의 발전사, 유럽 각국에서 태어난 ‘위대한 맥주’들의 연원, 맥주를 끔찍이 사랑했던 인물들의 일화가 담겨 있다. 맥주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와인과 달리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왕부터 농노까지 즐겨 마신 ‘평등한 술’이었다. 양조장을 갖추고 있었던 중세 수도원 중에선 ‘구빈’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형제맥주’라는 이름으로 맥주 두 잔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곳도 있었으니. 16세기까지는 맥주 향을 내고 보존하는 데 쓰이는 ‘그루트’를 교회가 독점했으나, ‘홉’의 등장으로 양조 주도권은 ‘세속화’되며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품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왔던 수도원의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지금도 파울라너, 레페, 바이엔슈테판, 프란치스카너, 아우구스티너 등 명품 맥주가 생산되고 있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이라는 괴테의 말을 읽노라면, 당장 뮌헨의 비어가르텐으로 달려가 “프로스트!”(건배)를 외치고 싶어진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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