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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혹시… ‘구멍’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등록 2018-08-23 19:57수정 2018-08-23 20:18

길거리에서 구멍을 주운 찰리
구멍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
엉뚱한 상상과 반전 묘미
구멍을 주웠어
켈리 캔비 지음, 이상희 옮김/소원나무·1만3500원

구멍은 뚫는 것일까? 막는 것일까? 둘로 가르는 뻔한 생각을 깨는 것이 그림책의 임무인 양, 주인공 찰리는 구멍을 주워버린다. “세상에! 나만의 구멍이 생기다니!” 기쁨에 겨운 찰리는 구멍을 어디에 쓸 참인지, 주머니에도 넣어보고 가방에도 넣어본다.

<구멍을 주웠어>는 구멍을 주운 찰리가 구멍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찰리는 거리에 있는 가게마다 들러 “주운 구멍을 가지겠냐”고 묻는다. 반복이라는 안정된 이야기 구조로 유아의 호기심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차별점이라면 고작 두어줄 글로 짱짱한 이야기 완성도를 갖췄다는 점이다.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구멍을 가지라며 내밀 때 돌아오는 천연덕스러운 반응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그런 듯 아닌 듯 생각지도 못했던 구멍의 쓰임새를 따져보게 하는 작가의 솜씨가 노련하다.

찰리가 구멍을 줍고서 그토록 기뻐한 이유를 또래들은 안다. 구멍은 ‘잔소리 괴물’ 엄마를 피해 숨어드는 공간이 될 수도, 숨바꼭질 술래를 따돌릴 비밀 공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쏙 들어갈 ‘나만의 구멍’이 있다면 좋을 테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바지 주머니는 구멍을 넣고 다닐 곳이 못 됐다. 구멍이 구멍을 뚫어서 주머니에 있던 사탕이며 동전이며 줄줄 샜다. 가방에 넣어봐도 마찬가지였다. 구멍은 가방에도 구멍을 뚫어 문구류가 다 떨어져 나왔다. 찰리는 구멍을 요긴하게 쓸 주인을 찾아 나선다. 거리엔 ‘보트 빌더’ 배 수리점, ‘프로리스트 검프’ 꽃집, ‘브레드 피트’ 빵집, ‘월드 와이드 웹’ 거미·파충류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조심하세요’ ‘열지 마세요’란 문구와 함께 자물쇠가 채워진 파충류와 거미를 파는 가게에 구멍이 필요할까? 배를 만드는 가게에는? “구멍이 생기면 큰일이지!” 옷 수선 가게 아주머니는 “내가 온종일 하는 일이 그런 구멍을 없애는 일”이라고 한다.

구멍이 필요 없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원사 아저씨는 구멍을 이미 다 팠기에, 도넛 가게는 구멍 만드는 기계가 따로 있기에 필요 없다. 도로가 움푹 패인 ‘싱크홀’을 메우느라 진땀을 빼는 도로 공사 아저씨에겐 구멍이 넌더리날 테다.

찰리는 주인을 못 찾은 구멍을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놓는다. 책을 펴낸 이미순 소원나무 대표는 “구멍을 주웠다는 엉뚱한 상상과 구멍의 주인이 멀리 있지 않은 마지막 반전이 이야기의 묘미”라며 “원서에는 없던 구멍을 뚫는 표지디자인으로 재미를 더했다”고 말했다. 그림책 맨 뒷날개에 땅속 구멍을 좋아하는 동물인 뱀, 라쿤, 스컹크, 미어캣, 곰, 토끼, 거북이, 아르마딜로, 빌비 등을 그려놓아 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하기에 맞춤하다. 4~7살.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소원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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