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진보
최원식 지음/창비·2만원
올해로 칠순을 맞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평론집 <문학과 진보>를 펴냈다. 2001년에 낸 세번째 평론집 <문학의 귀환> 이후 17년 만이다.
표제 평론 ‘문학과 진보’는 2007년 12월 진보 문인 단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꾼 일을 계기 삼아 문학에서 ‘민족’과 ‘진보’의 의미와 필요를 궁구한 글이다. 그는 우선 문학의 매체인 언어가 의미와 밀접하게 결부되는 만큼 “문학에서 이데올로기는 (…) 필연적”이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과 예술은 이데올로기의 유혹으로부터 가능한 한 최대의 자유를 추구할 때 근사한 것”이라는 데에 난경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단체 이름에서 ‘민족’을 떼기로 결정한 데에서 보듯, 문학에서 ‘민족’과 ‘진보’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민족문학의 쇠퇴가 문학 전체의 하강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민족문학이 불순을 상실한 채 순수해지자, 중간파문학도 순수문학도 길을 잃었다.” 민족문학의 ‘불순’한 이데올로기가 한국문학 전체의 긴장과 활력을 담보한다는 판단이다.
평론집 <문학과 진보>를 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아주 좋은 시대가 되면 문학 앞에 ‘민족’이니 ‘진보’니 하는 말이 필요없게 되겠지만, 지금은 당연히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는 말로 책 제목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05년에 발표한 ‘자력갱생의 시학’은 이런 생각을 바탕 삼아 민족문학에 대한 비판에 응답한 글이다. 고은 시집 <만인보>가 민족을 일체화하고 민중을 신화화했다는 황종연의 비판에 대해 최 교수는 “고은은 결코 순진한 민중주의자 또는 단순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옹호한다. 민족이든 민중이든 단일하고 이상적인 관념을 상정하지 않는, ‘해체’이자 ‘종합’이요 “민중주의와 탈민중주의,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사이에서 균열하는 복합 텍스트”가 <만인보>라고 그는 강조한다. 김행숙이 자기 세대 이전 시들을 ‘동일성의 시학’으로 일괄 규정하는 것을 두고 “‘반(反)동일성의 동일성’에 포획될 우려”를 지적할 때에도, 민중시를 쓰던 시인들이 대거 자연과 생태로 방향을 튼 것을 비판한 김수이의 평론 ‘자연의 매트릭스에 갇힌 서정시’가 생태시를 단일한 실체로 단순화했으며 생태주의와 구분되는 생태적 가치의 필요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할 때에도 최 교수의 균형감각은 돋보인다. 더구나 “분단 한반도의 남쪽에서 살아가는 민중/시민이라는 자각”을 염두에 둘 때, “민족문학은 아직도 부득이 유효하다”는 것이 그의 양보할 수 없는 결론이다.
최 교수는 또 21세기 문학의 대중화에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그는 시 독자가 급감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시를 쓰려는 이는 느는 기이한 현상 배후에 ‘문학 대중화’가 있다고 본다. “한국시는 최근 전반적 이완의 경향을 보인다.” 2015년 문단 전체가 표절 논란으로 휘청거린 배경에도 인터넷을 등에 업은 대중의 발호가 있었다고 그는 파악한다. 이런 대중화 물결과 짝을 이루는 것이 비평의 쇠퇴다. “비평의 핵은 뭐라 해도 비판”인데 “비판이 실종된 평론이 범람”하면서 문학 전체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칠순에 맞추어 출간한 평론집 <문학과 진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평론집 이후 무려 17년 만에 내는 평론집 머리말에서 최 교수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평론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오후 서울 망원동 창비 건물에서 만난 그는 “본격 평론집으로는 마지막이라는 뜻”이라며 “앞으로도 또래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산문 형태의 글은 계속 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충무공 순국 칠주갑(420년)인 올해에는 충무공 조카 이분이 쓴 <행록>과 단재 신채호의 <이순신전>, 박태원의 <임진조국전쟁>을 한데 묶고 그에 관한 논문을 써서 책으로 낼 계획”이라며 “그런 뒤에는 한국 현대문학사 집필에 매달리겠다”고 말했다.
칠순에 즈음해 평론집 <문학과 진보>를 출간한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자신이 구상하는 문학사와 관련해 그는 “해방 뒤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은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자기 비판과 모더니즘의 반성이 만난 결과이며, 그것이 곧 일찍이 내가 주창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會通)론의 뿌리”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스트이자 리얼리스트였던 희귀한 시인” 김수영의 존재는 종요롭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서로의 발생 근거인 그 사회문학적 맥락을 소통적으로 이해하면서 대화를 지속할 때 ‘기우뚱한 균형’ 속에 서로가 서로를 머금은 무언가 새로운 문학이 탄생”할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 그는 “김수영을 다시 읽을 때”라고 강조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