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에스에프(SF) 소설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난 4월 서동수 상지대 교수는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라는 흥미로운 연구서를 내놓았다. 195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북한 에스에프의 기원과 장르 인식, 이념적 지향 등을 다룬 책이었다. 북한에서 에스에프는 ‘과학환상문학’이라 부르며, 특히 “우리 식의 과학환상문학”은 “허황한 공상이 아닌 력사와 과학발전의 합법칙성과 생활의 진실에 기초”한 “근거있는 과학적 환상”이라 규정한다고 서 교수는 소개했다. 이런 방침 위에서 북한의 에스에프는 인민 대중을 계몽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취급되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것.
새로 나온 과학 계간지 <에피> 제5호가 북한 에스에프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을 실어 눈길을 끈다. 한성호의 ‘억센 날개’가 그 작품으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조선문학> 2005년 3호에 실린 작품을 재수록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력설계연구소의 젊은 여성 연구사 지선희. “해상도시에 전력을 보장할 설계 과제”를 붙들고 씨름 중인 그에게 소장은 필요하면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라며 강철혁이라는 젊은 연구사를 추천한다. 그런데 철혁과 관련해 선희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그가 대학 졸업 논문 주제인 ‘액체석탄발전소’ 공업화 원리로 학교 안팎에서 칭찬을 듣고 언론에 인터뷰까지 실렸을 때 유일하게 선희 논문의 한계를 지적한 게 바로 철혁이었다. 화석연료로 한계가 엄연한데다 환경 문제도 걸려 있는 석탄 대신 다른 방도를 찾았어야 한다는 것. “조국의 진보에 충실한 과학의 날개를 달아주지 못하는 연구는 개인적인 명예의 추구로 떨어지고 만다는 걸 명심해두시오”라는 철혁의 충고는 지금까지도 선희를 괴롭히고 있다.
연구소의 과제 앞에서도 대학 시절 둘의 관계는 비슷한 꼴로 반복된다. 철혁은 선희가 “무궁무진한 창조의 원천”인 현장과 그곳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한편, 선희의 연구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마다 않는다. 대학 시절 기억 때문에 자존심을 앞세우며 철혁에게 날을 세우던 선희도 결국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강철혁이와 나란히 과학의 창공을 훨훨” 나는 꿈을 꾸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조국의 진보에 억센 날개를 달아주는 것, 달아주되 짐이 되지 않고 조국을 힘차게 떠미는 충실한 날개를 달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과학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연구소 박학민 소장의 이런 말은 북한 에스에프의 기본 이데올로기를 알게 한다.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에서 설명하는 대로, 인공지능이나 유전자공학 기술의 부작용에 따른 디스토피아가 아닌 조국 발전과 인민의 행복에 복무하는 과학을 그리는 게 북한 에스에프의 알짬이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