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조선 저잣거리 민심 달래는 이야기꾼 노인

등록 2005-12-08 19:22수정 2005-12-09 13:59

조수삼 시문집 <이야기책 읽어주는 노인>
조수삼 시문집 <이야기책 읽어주는 노인>
조수삼(1762~1849)은 다산 정약용과 같은 해에 태어나 그보다 열세 해를 더 산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다산과 달리 한미한 중인 출신이었던 그는 무관 말직으로 늙다가 나이 여든셋에 향시에 합격해 진사 벼슬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문학은 물론 의학과 바둑, 거문고, 글씨, 기억력 등에 두루 출중했다.

조선 후기 여항문학(=양반 아닌 저잣거리 사람의 문학)을 대표하는 조수삼의 시문집 <이야기책 읽어주는 노인>이 나왔다. 도서출판 보리에서 북쪽 번역본을 들여와 내고 있는 ‘겨레고전문학선집’의 열한 번째 권으로, 월북 시인 박세영(1902~89)과 박윤원이 옮겼다.

북쪽의 두 옮긴이는 조수삼을 일러 “진보적 사실주의 작가”라 규정했다. 책에 묶인 조수삼의 시문을 보면 과연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적 될 사람이 따로 있나/굶주림과 추위가 너무한 탓이지.”(<농성에서>)

“가을에 열 말 쌀 받아들이고/봄에는 닷 말의 겨를 내주네./잘 찧은 쌀은 어디로 가져가나/날마다 불리는 건 아전의 배로구나.”(<마랑도에서 2>)

앞의 인용은 홍경래의 난 직후 서북 지방 백성들의 참상을 노래한 연작시의 한 대목이고, 뒤의 시는 예순한 살 고령으로 서울에서 백두산까지를 200여일에 걸쳐 주파하고서 쓴 100수의 연작기행시 <북행백절>의 한 편이다. 삼정의 혼란과 탐관오리의 탐학 속에 신음하는 백성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분노가 드러난다.

시문집의 표제작은 저잣거리에서 이야기책을 외워 들려주는 노인에 대한 글이다. 사람들이 둘러싸서 흥미롭게 귀를 기울이면 “노인은 가장 재미난 대목을 앞에 놓고 입을 다문다.” 그러면 사람들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져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술에 취하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던 장생,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치고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말라’며 붉은 매화 한 가지를 그려서 남긴 일지매, 재산을 다 털어 백성을 구제한 제주 기생 만덕 등 43명의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도 흥미롭다.

최재봉 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