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소설 ‘연애의 기억’
열아홉 청년과 엄마뻘 여성 이야기
작가 자신의 경험 담은 ‘자전소설’
열아홉 청년과 엄마뻘 여성 이야기
작가 자신의 경험 담은 ‘자전소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다산책방·1만5000원 “나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사랑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시간과 퇴색에 내력이 있다고 믿었다.” 첫사랑은 풋풋한 만큼 서투르다. 순수하지만 잔인하기도 하다. 첫사랑은 오래 기억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답게 채색되고 거짓으로 각색되기도 한다. 첫사랑은 그렇게 이야기가 된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은 이야기로 몸을 바꾼 첫사랑의 기억을 다룬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으며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주인공 수전의 말에서 원제(‘The Only Story’)가 왔다. 수전이 말하는 단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꼭 첫사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파트너였던 열아홉 청년 폴에게 그것은 역시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그의 경우에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렸다. 엄살이거나 과장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폴과 수전의 사랑은 그만큼 특별하고 이채로웠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폴이 방학 동안 다닌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 수전을 만났을 때 수전의 나이는 48살. 어머니뻘이었다. 이 파격적인 커플의 십여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가 <연애의 기억>을 이룬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소설의 첫 두 문장은 어쩐지 카뮈의 <시지프 신화> 속 저 유명한 도입부를 떠오르게 한다. “참으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말하자면 폴에게 사랑과 고통의 상관관계는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치명적 질문에 육박하는, 이념적 무게를 지니는 것이다. 폴의 이념은 물론,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는 쪽이었다. 서른살 가까이 어린 청년의 사랑을 얻었다고 해서 수전을 ‘요부’쯤으로 짐작해서는 곤란하다. 폴 또래인 딸 둘을 둔 유부녀임에도 수전은 폴과 비슷하게 육체적 사랑에 미숙했다. 폴이 수전에게서 본 것은 오히려 ‘젊음’과 유쾌함이었다. 수전은 “삶에 웃음을 터뜨”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 닳아버린 세대야”라는 말이, 자기 세대의 뻔뻔함과 비속함에 거리를 두는 수전의 ‘젊음’을 알게 한다면, 제 남편이 열중하는 골프를 두고 “정지해 있는 공을 치는 것은 명백히 정정당당하지 못한 일”이라 말하는 데에서는 그의 유머감각이 엿보인다.
열아홉살 청년과 엄마뻘 여성의 사랑을 다룬 소설 <연애의 기억>의 작가 줄리언 반스. 작가 자신이 젊은 시절 경험한 비슷한 형태의 사랑을 소재로 삼았다. ⓒ Alan Ed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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