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인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 시인은 오는 10~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브룩클린 북페스티벌'에 참가해 `문학과 저항'을 주제로 대담하고 작품을 낭독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꿀잠’으로 등단했지만
문학보다 투쟁 먼저였던 삶
‘바람직한 사회’ 꿈 향한 싸움
결국엔 다시 문학으로 이어져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던 시인
’문학과 저항’ 경험 나누러 뉴욕행
“미국 내 ‘꿈꾸는 목소리’ 듣고
낯선 곳, 낯선 나를 만나고 싶어”
“천상병시문학상을 받는 날/ 오전엔 또 벌 받을 일 있어/ 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 있었다// (…) // 신동엽문학상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 오후엔/ 드디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송경동 ‘시인과 죄수’ 부분)
송경동의 세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에 실린 시 ‘시인과 죄수’는 시인과 죄수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정체성으로 시인 자신의 현재를 요약한다. 그는 21세기 한국 시의 한 흐름을 대표하는 시인인 동시에 각종 사회적 현안에 몸을 사리지 않는 활동가로서 자주 법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명박근혜 시절 문화예술계를 옥죈 블랙리스트가 그런 그를 피해 갈 리 없었다. 그는 2014년 3월 국정원이 작성한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이라는 청와대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고, 반드시 그 때문은 아니지만, 지난해 7월 출범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총괄간사로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문학계의 블랙리스트 집행 기관 중 하나였던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가하고자 1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번역원이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코리안 리터리처 나우>(Korean Literature Now)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서 열리는 브루클린 북페스티벌 문학 행사에서 ‘문학과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소설가 황정은과 함께 15일 열리는 브루클린 북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한편, 그에 앞서 12일과 13일에는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 워크숍과 컬럼비아대 강연 등에도 참가한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각료회담 저지투쟁에 참가하느라 출국했던 것에 이어 이번이 해외 여행 두번째라는 송경동 시인을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송경동 시인.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저는 문인 해외 레지던시 같은 데에 한번도 신청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활동을 하면서 ‘블랙(리스트)도 화이트도 없는 세상’을 모토로 삼았는데,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게 마땅할까 고민이 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번 뉴욕 행사 주제가 ‘문학과 저항’이라는 점에서 제가 그쪽 문인들과 나눌 얘기가 있겠다 싶어서 응낙했습니다. 마침 지금은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미국의 역할도 큰 만큼, 그런 점에서도 미국 작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어요.”
송 시인은 “특히 행사가 열리는 뉴욕은 2011년 가을 ‘월가를 점령하라’는 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진 곳인데, 당시 나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고공 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 운동 기획자로 수배 중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며 “오큐파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미국 내의 ‘꿈꾸는 목소리’들을 들어보고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것은 배워 오고 싶다”고 미국행 포부를 밝혔다.
송경동 시인은 2001년 등단해 2006년에 첫 시집 <꿀잠>을 펴냈지만, 두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2009) 이전에는 시인으로서보다는 활동가로서 더 알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2003년 멕시코 칸쿤 투쟁에 이어 평택 대추리 미군부대 이전 반대 싸움, 한미 에프티에이(FTA) 저지투쟁,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세월호 만민공동회와 ‘연장전’, ‘장그레 살리기 운동본부’와 ‘을들의 국민투표’, 민중총궐기, 박근혜 퇴진투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싸움의 현장에 그는 출석 도장을 찍듯이 ‘개근’을 했다. 단순히 ‘개근’을 한 정도가 아니라, 투쟁 방향과 형식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대추리 진압 경찰의 폭력에 머리가 깨지고, 농성하던 대형 포크레인에서 떨어져 발 골절상을 입는 등 몸을 아끼지 않은 그이지만, 희망버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만민공동회, 연장전, 을들의 국민투표, 오체투지, 광화문 캠핑촌 같은 ‘참신한’ 투쟁 방식은 역시 시인다운 발랄한 상상력에 힘입은 바 컸다.
“구로공단에서 30대 초반까지 노동자로 보내고 그 뒤 십몇년을 길거리에서 정신 없이 살아온 것 같아요. 제가 명색 시인이니 주(主)가 문학이어야 할 텐데, 어쩌다 보니 문학이 부(副)가 되었습니다. 활동에 매달리다 보면 문학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 일 자체가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꿈과 공감을 담은 시라고 생각하게 돼요. 반드시 글로 표현되는 것만이 문학이 아니라 꿈꾸는 일들이 곧 시요 문학이 아닐까 싶구요, 또 그렇게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문학으로 이어지기도 하더라구요.”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는 자신이 관여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활동과 관련해서는 “문체부 장관 자문기구여서 수사권이 없다는 점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근 10년에 걸쳐 문화예술계를 질식시킨 이 엄청난 사건과 관련해서는 좀 더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규정을 갖추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송경동 시인은 생애 두번째 해외 여행인 이번 미국행을 일종의 ‘삶의 쉼표’로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번역원 주관 행사가 끝난 뒤에도 10월 초 정도까지 미국에 남아 있다 올 생각입니다. 낯선 곳에 있는 저를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워낙 쉴 틈 없이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정서도 메마르고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과 고독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더군요. 이제는 한번쯤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고민도 해보고 싶고요. 물론 그래도 기본적으로 해왔던 흐름에 큰 변화가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하하.”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