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우 잔인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에 이런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고 뜻깊게 생각합니다. 25년 전 오슬로협정 체결 전에는 제 작품들이 서구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슬로협정 이후로는 아랍권 문학작품들이 전반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의 여러분들이 저와 제 문학을 기억해준 것, 아랍 여성을 기억해준 것에 감사 드립니다.”
팔레스타인 소설가 사하르 칼리파(77)가 서울 은평구가 주최하는 제2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은 송경동 시인에게 돌아갔다. 칼리파는 13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의 성격과 목적을 알지 못했지만, 이 상이 민중과 여성 권리 향상, 평화, 분단 극복 및 통일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칼리파는 1941년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라말라의 비르제이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여성학과 미국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고향 나블루스에 여성문제연구소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우리는 더 이상 너희들의 노예가 아니다>(1974) <실재하지 않는 여인의 고백>(1986)처럼 철저한 페미니즘의 시각을 고수하는 작품들과, <가시 선인장>(1976) <해바라기>(1980)와 같이 조국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주제로 하면서 여성문제를 아우르는 작품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한국에는 <가시 선인장>과 <유산> <뜨거웠던 봄> <형상, 성상, 그리고 구약> 등이 번역돼 있다. 칼리파는 <형상, 성상, 그리고 구약>으로 2006년 아랍 최고 권위의 나깁 마흐푸즈 문학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알베르토 모라비아 이탈리아 번역 문학상과 모로코의 모하메트 자프자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제2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들.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최인석(왼쪽부터), 수상자 사하르 칼리파, 송경숙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준 시인(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 수상자 송경동 시인의 대리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
칼리파의 소설 <가시 선인장>과 <유산>의 번역자로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송경숙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은 단지 여성들의 일반적인 차별이 아니라 이스라엘 치하에서 그 억압을 견뎌야 하는 동시에 이슬람 문화와도 싸워야 하는 아랍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며 “독일에서는 칼리파를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 견주기도 하지만, 칼리파의 소설은 여성 개인의 삶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족의 삶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문학 세계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칼리파 역시 “더 젊었을 때는 ‘팔레스타인의 버지니아 울프’라는 별칭이 듣기 좋았지만, 지금은 그의 문학과 내 문학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울프는 사회정치적 사안을 다루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듯하지만, 나는 내가 온몸으로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사회 현실을 문학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작가”라고 말했다.
“거의 대부분의 생애 동안 저는 이스라엘 점령 치하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 혹은 작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문학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져 봅니다. 저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 사안을 다루지 않는 작가나 여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만, 문학은 정치나 외교와 달라서 피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매우 심층적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싸울 수 있는 힘은 예술과 문학, 그리고 상상력”이라며 “스스로도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상상하게 해주는 게 작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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