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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프리카를 위한 ‘설욕’의 문명사

등록 2018-09-13 19:34수정 2018-09-13 19:45

문명학자 정수일 28년 연구 종착지
이집트·튀니지·가나·세네갈·탄자니아…
아프리카 수천년의 찬란한 문명과
노예·식민지·내전의 슬픈 역사 조명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1, 2
정수일 지음/창비·각 권 2만7000원

“이번 책은 제게 28년에 걸친 세계 문명답사, 종횡세계일주를 완결짓는 인증샷이자 새로운 시작의 다짐입니다.”

문명교류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정수일(84)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전 단국대 교수)이 신간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를 냈다. 1994년 <신라·서역 교류사>를 시작으로 <실크로드학> <이슬람 문명> <한국 속의 세계>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문명의 보고 라틴아메리카를 가다> 등에 이어 통산 스물세번째 저작(역주서 4권 포함)이다. 고대 이집트부터 ‘무지개빛 미래’를 꿈꾸는 21세기 현재까지 아프리카의 문명과 역사를 두 권 1050쪽 분량에 65편의 글과 700여장 사진으로 기록한 대작이다.

지난 11일 낮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한 노학자는 여전히 식지 않은 학구열을 내비쳤다. 특히 이번 책은 그가 맨처음 문명교류 담론에 눈을 뜬 곳이자 인류 문명의 시원인 아프리카에 마침내 가닿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반도, 초원과 해상 실크로드, 남미를 거쳐 온 머나먼 여정이었다. “2014년 4월부터 60일 동안 아프리카 답사를 했습니다. 비행기만 32번을 탔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곧바로 자료를 정리하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지난 11일 신간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의 대강을 설명하고 있다. 창비 제공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지난 11일 신간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의 대강을 설명하고 있다. 창비 제공

이집트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 중 람세스 2세 신전의 입구 전경. 정수일 제공
이집트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 중 람세스 2세 신전의 입구 전경. 정수일 제공

아프리카는 중국 옌볜 태생의 정 소장에게 맨처음 세계와 문명을 향한 눈을 띄워준 곳이다. 1955년 중국 국비장학생으로 이집트 카이로대학에 유학을 간 것.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여전히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억압에 신음하던 때였다. “백두산 오지에서 자란 촌뜨기였는데 이집트 고대문명을 처음 알았고, 아프리카의 치욕스런 역사도 알게 됐습니다. 아프리카를 보면서 왜 세계가 이리 됐을까 의문을 갖게 됐지요. 1958년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민족해방운동이 왕성해질 무렵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내내 아프리카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4년 한국(서울)에 온 뒤로도 북아프리카에 두 번 더 다녀왔고,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문명교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 소장은 “이번 책은 아프리카를 위한 ‘설욕의 문명사’라고 할 수 있다”며, 크게 3가지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첫째, 수백년에 걸쳐 전 대륙이 식민지화되고 제국주의의 수탈 속에서 내분과 빈곤을 겪어온 비극적 역사, 둘째, 아프리카 해방투쟁 1세대 인물들이 추구한 사회주의 발전 모델의 의미와 현재의 실제와 허상, 셋째는 ‘세계의 일체성’이다.

“많이 고심하고 쓴 게 사해시일(四海是一), 즉 ‘세계는 하나’라는 뜻인데, 이는 문명사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이며 제 세계관·역사관·문명관입니다. 우선 인류는 공통조상을 가진 동족 혈통입니다. 또 모든 역사에는 상이한 현상의 내면을 관통하는 공통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명은 교류하고 통섭하지요. 끝으로 모든 인류가 평등·자유·사랑 같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겁니다. ”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있는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2010년 완공)는 높이 52m의 웅장한 규모로 아프리카 부흥과 미래의 희망을 표현했다. 정수일 제공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있는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2010년 완공)는 높이 52m의 웅장한 규모로 아프리카 부흥과 미래의 희망을 표현했다. 정수일 제공

20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주의)에 맞서 싸우던 흑인 원주민들의 모습. 정수일 제공
20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주의)에 맞서 싸우던 흑인 원주민들의 모습. 정수일 제공

두 권의 책은 각각 2부씩 4개의 큰 주제로 짜였다. 1부 ‘세계를 향해 눈을 뜨게 한 곳’, 2부 ‘굴종의 땅에서 도전의 땅으로의 여정, 3부 ‘문명화의 덫에 걸린 비운의 대륙’, 4부 ‘아시아의 가까운 이웃’이다. 1부에선 지은이 자신이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뎠던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피라미드가 모인 왕가의 계곡, 태양신앙의 상징물을 비롯한 각종 신전 등 고대 이집트 문명을 자세히 소개한다. 20세기 나세르 혁명과 중동 분쟁, 21세기 아랍의 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또 인접국인 리비아, 카르타고의 영광을 간직한 튀니지,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모로코, 아프리카의 대국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빛나는 속살을 보여준다.

2부에선 14세기 아랍 탐험가 이븐 바투타가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꼽히는 <여행기>(Rihla)에서 ‘금은보화가 넘치고 정의로우며 안정된 사회’로 묘사한 세네갈로 안내하는가 하면,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에게 끌려간 노예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를 더듬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세디 문화촌에서 현지 원주민들이 용맹을 과시하는 민속춤을 공연하고 있다. 정수일 제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세디 문화촌에서 현지 원주민들이 용맹을 과시하는 민속춤을 공연하고 있다. 정수일 제공
탄자니아의 마냐라호 국립공원 안에 있는 기념품 상점에 다양한 민속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수일 제공
탄자니아의 마냐라호 국립공원 안에 있는 기념품 상점에 다양한 민속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수일 제공

3부에선 풍부한 자원이 저주가 된 가나와 콩고, 최초의 인류 ‘루시’의 고향인 에티오피아, 최악의 흑백차별에 맞서 싸우며 ‘무지개 나라’를 꿈꾼 만델라의 남아프리카공화국, 400년 식민 고도(古都)가 있는 모잠비크 등을 소개한다. 4부에선 아프리카의 흑진주로 불리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와 “마음만은 남겨두고 가라”던 절규가 들리는 듯한 19세기 노예무역항 바가모요의 찬란한 문화유적과 비통한 역사가 대비된다. 케냐의 말린디에는 15세기 명나라 정화의 무역함대가 싣고 온 문명교류의 유물과 흔적이 또렷하다. 1960년 콩고가 벨기에에서 독립한 직후 벌어진 내전 시기에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가 직접 건너가 좌파 세력에 자신의 게릴라전 노하우를 전해준 이야기도 나온다.

1960년대 콩고 내전 당시 좌파 해방투쟁세력을 지원하러 간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왼쪽)가 원주민 아이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1960년대 콩고 내전 당시 좌파 해방투쟁세력을 지원하러 간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왼쪽)가 원주민 아이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캐냐의 마사이마라 공원에서 마사이족 부인들이 호객 프로그램의 하나로 합창하고 있다. 정수일 제공
캐냐의 마사이마라 공원에서 마사이족 부인들이 호객 프로그램의 하나로 합창하고 있다. 정수일 제공

지은이는 책의 닫는 글 ‘무지개 미래의 가능성과 잠재력’에서, 세네갈 혈통의 시인 다비드 디오프(1927~1960)가 아프리카의 자부심과 희망을 노래한 ‘아프리카’ 전문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 창백하게 시든 꽃들 가운데/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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