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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통에 무슨 뜻이?’… 이기호가 다시 쓴 욥기

등록 2018-09-13 19:37수정 2018-09-13 20:05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
이기호 지음/현대문학·1만1200원

이기호(사진)의 소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에는 ‘욥기 43장’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구약 욥기는 42장으로 끝난다. 그러니 이 소설은 구약 욥기의 뒷이야기라 하겠는데, 그보다는 욥기에 대한 작가 이기호의 해석이나 변주에 더 가깝다.

소설은 모두 12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대로 목양면의 어느 교회 건물에 불이 나고, 방화 가능성을 포함해 화재 원인을 추적하는 형사에게 참고인들이 하는 진술이 11개, 핵심 인물인 최근직 장로의 신앙 간증집에서 발췌한 내용이 1개 장을 이룬다. 형사의 질문에 답하는 참고인 가운데 ‘하나님(???세, 무직)’이 들어 있는 게 익살맞다.

알다시피 구약 욥기는 독실한 신앙인 욥이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하느님이 내린 가혹한 시련 앞에 좌절하고 분노하다가 끝내 신앙을 되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욥과 같은 신앙을 지니지 않은 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시련이요 ‘굴복’이다. 작가 역시 그런 의구심과 불만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노라고 밝혔다.

<목양면…>에서 욥에 해당하는 인물은 최근직 장로. 팔십대 중반인 그는 일찍이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고 실의에 빠져 자살하려다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바꾼 이력이 있다. 그는 그 뒤 새로 꾸린 가정에서 아들 요한을 낳고 그 아들을 목사로 키웠으나, 자신이 세운 교회 건물 화재로 그 아들을 다시 잃는다. 독실한 신앙인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던 그는 교회 안팎에서 “베드로 같은 분”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베드로이자 욥인 최근직 장로의 신앙심은 거듭되는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아니 욥과 같은 그의 불굴의 믿음은 애초에 신뢰할 만한 것이었는가.

교회 건물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헌금에 손을 대던 고교생, 화재를 진압하고 그 원인을 조사한 소방대원, 교회 건물 식당 주인, 전도사 등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표면의 사실과는 다른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선, 최근직 장로와 그 외아들인 최요한 목사 사이에 교회 운영을 둘러싸고 마찰이 있었고, 목사에게 경제권이 없었으며, 급기야 최 목사가 아버지 몰래 교회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 투자를 할 계획이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난다.

아버지 최근직 장로와의 관계가 삐걱댈 뿐만 아니라 최 목사의 신앙심 자체도 허약하고 의심스러운 것임이 차차 드러나는데, 더 큰 문제는 최근직 장로의 시련과 그 극복이라는 ‘신화’가 날조되었을 가능성에서 온다. 이런 가능성이 주로 ‘하나님’의 진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더욱 치명적인데, 자세한 사정은 책을 읽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왜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인지…. 고통에 무슨 뜻이 있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최근직 장로는 형사에게라기보다는 그가 믿는 하느님에게 하소연하듯 묻는다. 그러나 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하느님도 알고 독자도 알고 있다. 그렇게 남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그 역시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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