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 브라운·개빈 브라운·제이슨 림 엮음, 김현철·시우·정규리 옮김/이매진·2만8000원 2000년부터 서울에서, 2009년부턴 대구에서도, 올해엔 부산·전주·제주·인천·광주에서도 잇달아 퀴어 축제가 열린다. 섹슈얼리티 지리학이 본격적인 탐구 영역이 된 것도 2000년대부터다. 이 책은 지리학 관점에서 ‘섹슈얼리티’라는 주제가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보여주는 길잡이 같은 책이다. 원서가 나온 지 11년이 지났지만, 오늘,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섹슈얼리티 지리학과 퀴어 지리학을 아우르는 지도의 역할로 충분하다. 엮은이는 이론과 실천, 정치 등 세 부분으로 나눠 학자 18명의 연구를 소개한다. 사회적 관계, 제도, 욕망, 공간이란 시선에서 바라본 섹슈얼리티란 소재는 흥미롭다. 각국의 사례는 급변하고, 복잡하며, 평범치 않다. 13장 ‘발톱 뽑힌 고양이’ 편에 소개된 1981년 캐나다 토론토의 게이 사우나 기습단속 사례를 보자. 당시 경찰은 사우나 4곳을 동시 습격해 남성 304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20명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했다. 다음날 3천명이 넘는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캐나다 게이·레즈비언 운동의 중심 사건이다. 28년 후인 2009년 9월, 토론토 여성전용사우나협회가 게이 사우나에서 퀴어 행사를 열었을 때, 한밤중 출동한 남성 사복경찰 5명은 건물 4개층을 샅샅이 수색하고 관련자를 기소한다.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남성 경찰관을 파견한 경찰당국의 행위를 ‘시각적 강간’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2016년엔 토론토 경찰청장이 35년 전 게이 사우나 급습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까지 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역할을 해낸, ‘풀뿌리 정치 운동’의 모습은 섹슈얼리티 관점으로 우리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뭉치고, 단단해져 가는지 설명한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