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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술집으로, 스페인 투우장으로…헤밍웨이 찾아 삼만리

등록 2018-09-13 19:37수정 2018-09-13 20:04

백민석 문학답사기 ‘헤밍웨이’ 내놔
4개 나라 6개 도시 걸친 흔적 좇아
“헤밍웨이는 사이즈 다른 ‘초인’”
헤밍웨이
백민석 지음/아르테·1만8800원

쿠바 아바나 구시가지의 레스토랑 바 ‘라 보데기타’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헤밍웨이 팬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칵테일 모히토를 마신다. 스페인 북부 도시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투우 축제는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와 논픽션 <오후의 죽음> 덕분에 세계적 지명도를 얻게 됐다. 조용필의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의 명백한 영향을 보여준다. 헤밍웨이 사후 50년이던 2011년에 한국의 여러 출판사는 저작권이 풀린 그의 소설들을 경쟁적으로 펴냈다. 가히 ‘헤밍웨이 산업’이라 할 만한 현상들이다.

소설가 백민석의 책 <헤밍웨이>는 말하자면 ‘헤밍웨이 산업’의 비밀을 파헤쳐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헤밍웨이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의 어떤 면모가 사후 반세기가 넘도록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는지를, 생전 헤밍웨이가 살았거나 머물렀던 공간을 찾아가 확인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쿠바 아바나와 코히마르, 스페인 팜플로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와 베네치아 등 4개 나라 여섯 도시에 흩어져 있는 헤밍웨이의 흔적을 좇으며 그의 삶과 문학이 해당 공간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들춰내고자 한다.

쿠바 아바나에 살던 시절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었던 ‘엘 플로리디타’의 바 끄트머리에 세워진 헤밍웨이 청동 흉상과 포즈를 취한 작가 백민석. 두사람의 표정이 어쩐지 닮아 보인다. 백민석 제공
쿠바 아바나에 살던 시절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었던 ‘엘 플로리디타’의 바 끄트머리에 세워진 헤밍웨이 청동 흉상과 포즈를 취한 작가 백민석. 두사람의 표정이 어쩐지 닮아 보인다. 백민석 제공

“어떻게 그는 그 많은 글을 쓰고,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사고를 당하고, 그 많은 병을 앓고, 그 많은 여행과 이사를 다니고, 그 많은 연애를 하고, 그 많은 전장을 쫓아다닐 수 있었을까.”

60년을 갓 넘는 생애 동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고 풍부한 경험을 한 헤밍웨이를 가리켜 백민석은 ‘초인’이라 일컫는다. 니체적 의미도 아니고 초능력을 지녔다는 뜻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사이즈의 삶을 살았다”는 뜻에서다. 다른 면모도 감탄스럽지만, 헤밍웨이가 평생 서른두번 사고를 당했고 서른여섯번 질병을 앓았다는 것, 그 가운데는 비행기 사고가 두 번, 뇌진탕이 다섯 번 있었으며, 눈 질환, 다리 통증, 패혈증, 폐렴, 고혈압, 간염, 알코올중독 등은 평생 반복된 고질병이었다는 것, 이런 신체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다낚시와 사파리 사냥, 권투, 투우 같은 위험한 스포츠를 말년까지 즐겼으며 음주 운전도 그만두지 않았고, 1·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그리스-터키 전쟁,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남들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헤밍웨이만의 표식과도 같다.

“그는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술집에 있거나 전쟁터에 있거나 투우장에 있거나 사냥터에 있거나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아니다. 그가 남긴 사진들을 보면 사냥터에서 쭈그리고 앉아 종이 쪼가리에 글을 쓰거나 차량 짐칸에 타자기를 올려놓고 선 채로 글을 쓰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삶에서 나온 것이 헤밍웨이 고유의 소설 미학이다. 백민석은 “하드보일드 스타일, 입말체 대화법, 빙산의 이론, 남근중심주의 등 헤밍웨이 소설 미학의 핵심들은 그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의 삶과 경험과 행동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한겨레>와 통화에서 설명했다. 그는 “감정과 스토리라인의 절제라는 헤밍웨이 소설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며 “자신에 대한 비판과 자부심, 자기 절제가 어우러진 이 작품을 절정으로 해서 그 뒤로는 헤밍웨이가 육체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허물어져간 듯하다”고 말했다.

파리 시절 헤밍웨이가 ‘홈 카페’라 부를 정도로 애용했던 식당에서 그가 먹었던 푸아그라와 달팽이 요리를 시켜 먹으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싸움은 물론 움직임 자체를 멈춘 투우를 보며 숙연해하고, 가이드북이나 관광 안내서에도 나오지 않는 코히마르 어항을 서너번이나 되풀이 찾아갈 정도로 헤밍웨이의 흔적을 좇는 백민석의 발걸음은 열정과 의욕에 넘쳤다. 아바나의 저택 핀카 비히아 욕실의 벽에 매일 아침 체중을 적어 놓았던 데에서 헤밍웨이가 뜻밖에도 꼼꼼한 성격이었음을 확인한 것도 그런 바지런한 걸음과 날카로운 관찰력 덕분이었다. 3년에 걸친 답사와 집필을 마치며 백민석은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흉내내 이렇게 쓴다. “헤밍웨이의 문학은 파멸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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