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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조선 최고 문인화가 이인상의 예술세계

등록 2018-09-20 21:34수정 2018-09-20 22:46

박희병 서울대교수의 역작
심층연구 없는 학계의 한계 딛고
새 작품과 사료 무더기 발굴
사상, 예술관 처음 총체적 분석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1(회화), 2(서예)
박희병 지음/돌베개·각 권 10만원

한문학자인 박희병(62) 서울대 교수가 20년 산고 끝에 필생의 예술사 저술을 내놓았다. 후대에 온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선비화가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의 삶과 사상, 예술세계를 처음 총체적으로 정리한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1·2>이다. 1권 회화가 1014쪽, 2권 서예가 1288쪽에 이르는 거작으로, 그의 예술세계와 생애, 사상 편력 등에 대해 기존 연구를 훌쩍 넘는 결실을 내놓았다고 평할 만하다.

18세기 숙종·경종·영조 치세기를 살았던 능호관은 당쟁이 치열했던 당대를 더럽혀진 난세라고 여기면서 초야에서 그림·글씨를 창작하며 청빈한 삶을 살았다. 이런 그를 미술사가들은 한결같이 호평해왔다. 서얼 출신이란 자의식을 표출하면서 그림·글씨·시 분야에서 사대부 예술가의 최고 경지인 삼절(三絶)에 올랐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작가의 실체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서 단행본 한권 없었고, 자화상으로 비치는 <검선도>나 <설송도> 같은 명작들이 알려졌지만 특별전은 전무했다. 서화의 경우 박사학위 논문은 없고,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1983년 쓴 <능호관 이인상의 삶과 예술>을 비롯한 석사논문 몇점, 2001년 펴낸 <화인열전 2>에 실린 69쪽 분량의 이인상 일대기 정도가 언급될 뿐이다.

능호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병국도>. 유홍준 교수 등 기존 미술사학계 연구자들은 말년작으로 보았으나, 박희병 교수는 이 작품의 관지를 분석한 결과 20대 시절의 그림이 분명하다며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능호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병국도>. 유홍준 교수 등 기존 미술사학계 연구자들은 말년작으로 보았으나, 박희병 교수는 이 작품의 관지를 분석한 결과 20대 시절의 그림이 분명하다며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이처럼 후대 연구가 빈약한 모순은 능호관의 예술적 경지가 그만큼 심오하고 난해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실경묘사와 동떨어진 문인화를 그렸고, 추사 김정희처럼 괴한 느낌의 전서, 예서 등 고문 글씨를 즐겨 썼기에 안목이 숙련되고 한학 실력이 있어야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회화사 연구자들이 문집이나 관지, 한시를 해독할 역량이 미진했던 것도 주된 요인이었다.

<…서화평석>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 40여년간 답보상태였던 작가 연구에 새 활로가 될 만한 분석틀을 제시한다. 20년간의 자료 수집·분석을 거쳐 2016년 문집 <능호집> 번역본을 먼저 냈고, 뒤이어 나온 이 저술은 회화 64점, 서예 127점, 전각 30종 등 지금껏 확인된 능호관의 전 작품을 싣고 시, 문집, 글씨, 서화에 붙은 관지(창작 경위 등을 적은 글) 등을 샅샅이 분석하면서, 동시대 거장 겸재 정선이나 19세기 추사 김정희에 견줄 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능호집>의 초고 <뇌상관고>를 후손가에서 찾아내 집필의 끌차로 삼았고, 글씨는 기존 작품들보다 훨씬 많은 새 작품들을 발굴했다. 금석문은 현장 탁본까지 했고, 경매에서 작품을 사서 연구하기도 했다.

능호관 이인상의 진영.
능호관 이인상의 진영.

<이인상서화첩>에 실린 이인상의 주요 글씨작품 가운데 하나인 ‘이소’.
<이인상서화첩>에 실린 이인상의 주요 글씨작품 가운데 하나인 ‘이소’.

핍진한 탐구의 결론은 역설적이다. 능호관은 망한 명나라에 대한 숭모사상과 당대 노론 당파의 의리를 중시하는 소외된 강경보수 지식인 집단(‘단호그룹’)의 주축이었고, 그런 성향이 독창적 예술세계를 이룩한 근본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 체계적으로 분석한 글씨 연구에서 도드라지는데, 오랑캐 청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공유한 보수지식인 집단 ‘단호그룹’과의 밀접한 교유가 고대 중국의 고문 금문 글씨를 탐구, 재해석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강조한다.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의 기운이 태동하던 시기에 되려 견고해진 능호관의 보수성은 시대착오적이지만, 작품들이 정신 지향적이고, 개성적인 법고창신의 경지로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 됐다는 풀이다. 이 땅의 실재하는 자연을 그린 그의 관념적 그림을 ‘본국산수’ 개념으로 풀고, 중국 화보를 독학하며 부단한 수련으로 자기 화풍을 이루었다는 점도 치밀한 작품 분석으로 논증한다. 책의 또다른 눈대목은 미술사학계를 겨냥한 비판이다. 양식론에 치중하면서 그림·글씨의 한문 텍스트 읽기,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등한시한 데 따른 오류를 지적하는 대목이 허다하다. 관지에 붙은 지명의 위치나 창작 배경을 파악하지 않은 채 황당한 제목을 붙이고 엉뚱한 해석이나 잘못된 이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비판은 통렬하다. 기존 학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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