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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언젠가 읽고 말테다…책 기자들의 버킷리스트

등록 2018-09-21 10:07수정 2018-09-21 15:03

책과 생각 추석특집

스위스 리기산 정상에서 잠시 가진 책 읽는 시간. 배경에 루체른 호수와 필라투스 산이 보인다. 사진 김지훈 기자
스위스 리기산 정상에서 잠시 가진 책 읽는 시간. 배경에 루체른 호수와 필라투스 산이 보인다. 사진 김지훈 기자
유장하게 출렁거리는 ‘조선문체’를 만나고자

국수(세트)
김성동 지음/솔(2018)

김성동이 대하소설 <국수> 전5권 완간 기자회견을 연 것은 7월17일이었다. 회견에 임하기에 앞서 작품을 다 읽는 게 도리이겠으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두 권 분량이라면 밤잠을 줄여서라도 완독에 도전하겠지만, 다섯 권짜리라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다. 별 수 없이 1권의 앞부분만 맛보기 식으로 읽고 회견장에 나갔더랬다.

회견에서 김성동은 소설의 내용보다 소설에 쓰인 ‘말’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요지는, 국어사전에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름다운 고유어를 최대한 살려 썼노라는 것이었다. ‘찔레꽃머리’ ‘꽃두레’ ‘꽃두루’ 같은 말을 예로 들었다. 자신이 <국수>를 쓴 목적이 “한독(漢毒)·왜독(倭毒)·양독(洋毒)에 짓밟히고 버려진 우리말을 나라도 챙겨서 남겨 놓자는 것”이었다고도 했다. 다섯권짜리 소설 세트에 270여쪽 <국수사전>을 별책으로 포함시킨 데에서도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단지 어휘 차원만이 아니다. 그는 작가들의 소설 문장조차 서구식 문장 구조 일색이라며 개탄했다. “유장하게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조선 문체”를 만나보기 어렵다는 것. 사실 ‘조선 문체’라면 김성동을 능가할 작가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령 <국수> 앞부분의 이런 대목을 보라.

“가느다랗게 떨리다가 시나브로 잦아드는 휘파람소리 같고, 풀먹여 잘 다린 진솔 두루마기자락 찢어지는 소리 같으며, 배밀이로 기어다니는 긴짐승이 장마 끝 토담 넘어가는 소리 같기도 한 그 는실난실한 소리는 바로 앞쪽에서 들려왔고, 도령은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스타일리스트’ 김성동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그렇지만 젊은 독자들에게는 까다롭고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작가의 친절한 낱말 풀이의 도움을 받아 가며 50쪽 또는 100쪽 정도를 읽어 내면, 그 다음부터는 조선 문체 특유의 가락에 실려 춤추듯 독서에 속도가 붙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여름 휴가 때 다른 책들과 함께 이 책 <국수>를 챙겨 갔다는데, 다 읽으셨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기자회견 뒤 언제고 마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게으름 탓임은 물론이지만, 하루살이처럼 밭은 기자의 일상에도 어느 정도는 탓을 돌리고 싶다. 각설하고, 모처럼 맞은 한가위 연휴, <국수>와 더불어 조선 말과 삶의 아름다움에나 취해 볼거나.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돈키호테를 읽으련다, 가자 산초!

돈키호테 1,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열린책들(2014)

올봄, 외국에서 1년 연수 중이던 -그래서 풍족한 시간을 철학책 읽기와 심포지엄(술 마시며 토론하기!), 좋은 아빠 놀이와 가족여행으로 알뜰하게 보내던- 후배 기자에게 페이스북에서 뜻밖의 공개 지명을 당했다.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도서 한 권을 읽은 뒤, 다른 7명에게 각기 다른 책 한 권을 추천하는 릴레이 게임이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는 그렇게 다시 다가왔다. 서양 근대소설의 효시이자,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됐다는 고전이다.

돈키호테. 기사 갑옷을 차려 입고,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창을 들고 풍차로 돌진하던 사내의 기상천외 모험담. 고뇌하는 햄릿과 대조되는 저돌적 성격의 대표 인물. 책을 추천받았을 때 기억나는 게 고작 그 정도였다. 어린 시절 삽화가 그려진 동화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사람도 드물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래, 이 참에 한번 읽어보자’, 용기와 의욕이 솟았다.

큰맘 먹고 최신 번역본을 샀다. 하지만 책은 첫날 잠시 주인의 눈길을 받은 이후 여지껏 거실 책장에 얌전히 누워 있다. 지명자가 7ⁿ(n=1, 2, 3, 4…)의 합이라는 기하급수로 늘다 보면 머잖아 독서 인구가 세계 인구를 넘어서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돈키호테>는 일단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흔히 ‘벽돌책’으로 불리는 엄청난 두께의 하드커버 양장본. 1, 2권을 합쳐 1720쪽이나 된다. 평소에도 신간 책들과 씨름하며 기사를 쓰느라, 일과 상관 없이 읽고 싶은 책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변명이다.

희망은 있다. 책장을 펼치면 맨 처음부터 ‘규정가격’, ‘정정에 대한 증명’, ‘특허장’, ‘베하르 공작에게’ 같은 내용이 흥미를 자아낸다. 이미 당시에 인쇄본 책에 규정가격 표시가 의무화돼, 왕실 서기가 이를 인증해야 판매가 가능했다. 발간에 앞서 왕실 심의회에 원본을 제출한 뒤, 수정 지시를 반영한 인쇄본과 대조·검토를 통과해야 출판 허가가 나왔다. 비밀 출판을 막기 위한 국왕의 출판 특허권(유효기간 10년)도 필수였다.

드디어 세르반테스의 서문.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가로운 독자여, 제가 제 지혜의 산물인 이 책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사려 깊고 가장 멋진 책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됐다. 가자, 산초!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피쿼드호는 언제쯤 모비 딕과 만나게 될까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2011)

애초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데다가, 직업적인 이유로 책을 읽어야 하는 처지가 된 뒤로는 ‘읽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독서가 쉽지 않아졌다. 책장에는 책등으로만 존재하는 책, 책표지나마 친숙해진 책, 서문이나 차례 정도라도 들춰본 책들만이 가득하다. 특히나 가까이하기 힘들어진 것은 고전문학 작품이다. 기사에 담을 내용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글자를 더듬어가는 독서 습관으론 차마 소설과 시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문학적 소양은, 어린시절 ‘읽었다’는 희미한 기억만 남은 ‘어린이문고’ 수준에 머물게 됐다.

그나마 “읽겠다”는 의지를 다져봤던 책이 한 권 있었으니,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이다. 5~6년 전 여름휴가를 맞이해 샀던 책으로, 그 뒤 휴가 때마다 책을 뽑아들고선 읽는 둥 마는 둥 하는 짓거리를 두어차례 반복했다. 독서가 끊긴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조차 불분명하다. 에이허브 선장의 등장 장면이 기억나는 것을 보니, 적어도 피쿼드호는 출항을 했었다. 아마 고래에 대한 지식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고래학’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던 듯하다.

읽지 않았어도 읽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이 고전이라는데, 실제로 <모비 딕>은 그 내용과 의미가 다양한 형태로 되새겨져왔기 때문에 더욱 친숙하다. 어렸을 때 읽은 ‘어린이문고’에도 아마 <백경>이란 책이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에 대해 대충이라도 주워섬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선원으로서 바다 생활을 해본 바 있는 작가의 이력, 1820년 고래잡이배 에식스호가 거대한 향유고래에 받혀 침몰한 실제 사건에 착안한 창작 배경, “내 이름은 이슈메일이라 해두자”는 유명한 첫 문장, 깊은 바다 속 마치 신 또는 괴물과 같은 거대한 향유고래의 존재, 깊은 원한을 품고 자신의 한쪽 다리를 가져간 고래를 쫓는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와 집착, 그 속에 담긴 서구 문명 전체에 대한 묵직한 비판….

그래봤자 읽지 않은 책은 그저 읽지 않은 책으로 남을 뿐이다. 책의 앞부분이라도 읽는 둥 마는 둥 봤기에, 이슈메일이 ‘이교도’ 작살잡이 퀴퀘그와 한 방을 쓰며 우애를 다지는 그 마법 같은 대목이라도 읽어놨기에, 다행히 <모비 딕>은 아직 ‘책등으로만 존재하는 책’으로 강등되진 않았다. 이번 명절 연휴 동안 이 책을 다 볼 수 있다면, 내 속에 잠들어버린 ‘읽고 싶은 욕망’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을런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여행 때문에 책 읽기, 책 때문에 여행하기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한겨레출판(2017)

책장에 앞으로 10년간은 읽을 수 있는 책이 쌓여 있지만, 또 책을 사고 말았다. 좋은 책 추천받아서 사고, 공돈이 생겨서 사고, 한 달간 안 샀으니 사고, 사고 사고 사고…. 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한때 온라인 유행어였던 이 말을 나는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다 이 생각을 하면서 대번 이해했다. 책을 사고픈 욕심이 끝이 없으니, 안 읽을 책을 계속 사는 실수를 반복할 수밖엔 없다.

이번엔 여행 때문이다. 여행은 좋은 책 살 핑계가 되어준다.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나도 일단 여행을 가기로 하면 가급적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뭔가 내가 여행을 가는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조금은 더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에 찾아가 작품의 뜨끈함을 되살리는 것도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5년 전 미국 출장 일정 중 하루 뉴욕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 기차역에 내린 순간, 얼리샤 키스의 히트곡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 장면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날 난 몇 시간이고 뉴욕 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다.

이번 나의 여행지는 스위스다. 스위스라고 하니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있는 한 병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휴가를 가기 일주일 전 추석 특집 책면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주제가 정해지자, 난 마침 구매한 이 책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책지성팀 선배인 최재봉 선임기자. “<마의 산>은 스위스 여행에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그냥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야.” 아… “그보다는 로베르트 발저가 낫지 않겠어?” 오… 그렇게 냉큼 책 한 권을 더 사들였다.

이번 여행엔 어느 때보다 읽을 책을 공들여 골랐지만, 정작 읽을 짬이 잘 안 난다. 고정 칼럼을 마감하느라 본격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비행시간을 다 까먹었다. 추석특집용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는 데스크의 지시에 사진을 찍으려 책을 꺼내 조금 읽은 게 전부다. 이 책들을 다 읽으려면, 아무래도 스위스를 다시 와야 할 운명인 걸까. 책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기,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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