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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망원동 임시거주자의 생활기이자 애정담

등록 2018-10-11 19:32수정 2018-10-12 12:01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서영인 글·보담 그림/서유재·1만4000원

평론 글쓰기에는 제약이 적지 않다. 근거나 대상이 되는 텍스트가 있어야 하고, 논리와 설득력을 갖추어야 하며, 주관의 과도한 표출을 자제해야 한다. 그 결과 재미 없고 딱딱한 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전문 독자만 읽는 글로 평론의 입지가 좁아진 지 오래다.

평론가들이 억눌러온 문학적 감수성을 표출하고 다수 독자와 만나는 수단으로 일쑤 기대는 장르가 에세이다. 평론에서 에세이로 아예 분야를 바꾼 정여울 같은 이도 있지만, 여느 평론가들도 산문집 또는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책 한두권씩은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평론가 서영인(사진)의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은 그가 5년째 거주하고 있는 서울 망원동의 이모저모를 자신의 일상에 겹쳐 풀어놓은 책이다.

홍대입구와 연남동에서 가까운 망원동은 특색 있는 맛집과 술집 등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이른바 ‘뜨는 동네’가 되었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닮았다고 해서 ‘망리단길’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은이는 그런 “무책임한 이름 붙이기”에 거부감을 내비친다. “동네들을 그런 식으로 묶으면서 일회성 소비생활을 조장하고 그것을 무언가 매력적인 일탈로 포장하는 것이 불만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어느 동네든 오래된 것과 새것이 어울려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로 빛을 뿜는 풍경이다.

“나는 오래된 가게와 낡은 세탁소와 비건 빵집이 함께 있는 망원동의 풍경이 좋다. 작은 리어카와 진열대 위에 도무지 누가 사 갈지 모르겠는 견과류와 반찬들과 중고물품을 늘어놓은 좌판이 쫓겨나지 않고 자기 장사를 하는 망원동을 좋아한다. (…) 뒤죽박죽에 질서 없이 그러나 무조건 열심인 대책 없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지은이가 망원동의 소비품화를 경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소비생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책 후반부에는 그가 단골로 다니는 식당과 술집, 목욕탕, 커피숍 등을 다룬 꼭지들이 놓였다. 짜장면과 짬뽕이 없는 중국집, 회의도 토론도 파티도 가능한 밀실이 있는 밥집 겸 술집, 삼치구이와 크림소스 가자미구이, 피자와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가 공존하는 음식점, 시집과 맥주를 세트로 파는 가게 등 그의 육체와 영혼을 달래주었던 집들 중 몇 곳은 그사이 없어졌지만, 그는 그런 상실 역시 삶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렇게 쓴다.

“다정함과 무심함 사이, 모르는 척 지나칠 때마다 잠시 뒤통수를 긁적이는, 이 골목에서 우리는 딱 그만큼의 공동체로 산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생활과 비밀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재미있을 거라고 호의적으로 상상하고 내색하지는 않으면서.”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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