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사회학자 이진경 교수
사회학자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매일 아침 108배를 한다. 올해로 20년째다. 하루 밀리면 다음 날 두배로 한단다. 방학 때는 친구들과 절에 가 참선도 해왔다. 1990년 감방에서 배운 요가는 16년째 선생 노릇도 하고 있단다. 그에게 386운동권의 대표 이론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1987년 대학원 시절에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은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의 필독서였다. ‘지하 조직운동’을 하다 옥고도 2년 치렀다.
그가 최근 2년 새 두 권의 불교책을 냈다. <불교를 철학하다>(2016, 한겨레출판)와 최근 나온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모과나무)이 그것이다. 전자가 불교 바깥에서 불교의 사유를 살핀 책이라면 후자는 불교 안으로 좀더 들어가 불교의 가르침을 껴안는다. 김 교수를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수유너머104 연구실에서 만났다.
불도인가? “절을 다니거나 법명을 받진 않았지만 불교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죠. ‘분별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그에게 분별이란 ‘호오와 미추와 같은 관념이 덧붙여진 구별이나 판단’이다.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분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론은 이렇게 풀었다. ‘인간엔 불변의 본성이 없으며, 당신의 본성은 당신의 이웃이 결정한다.’
불교와 어떻게 인연을? “고 김진균 교수가 세운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1999년 후배들과 인간적 갈등을 겪었어요. 당시 성철 스님 책도 봤고 중국 고승들의 문답 기록인 <벽암록>(그는 이 책을 ‘정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이라고 극찬했다)을 봤어요. 내 상황이 번뇌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죠. 그때 관악산 산보를 하며 평상엔 앉은 한 노인이 하늘을 향해 온갖 쌍욕을 하는 걸 봤어요. 이걸 보고 깨달았죠. ‘노인은 입 밖으로 욕을 하는데, 나는 입안으로 욕을 하고 있구나’라고요. 그 뒤 바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고 108배를 시작했죠.”
그 깨달음이란? “자기 가치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그 기준이 옳은지 그른지도 묻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자기랑 생각이 다르면 화를 내요. 질문도 자신이 세운 기준을 가지고 던집니다.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입니다. 성철 스님이 강조한 3천 배는 바로 아상을 버리는 신체적 훈련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로 불교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2001년부터 5년 동안 후배들과 불교 세미나도 했어요.“
깨달음은 ‘나의 변화’로 이어졌나? “머리 깎은 뒤론 논쟁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한때 날리는 논객이었잖아요. 하하. 이젠 논쟁은 안 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내가 나갑니다. 99년 시작한 수유너머도 두 번 깨졌어요. 그때도 싸우기보단 제가 짐을 쌌어요.”
그는 논쟁은 싸움이고 남을 뭉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을 통해 잘못을 고쳐 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 목적을 이루려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방어벽이 생기면 서로의 차이가 더 강해져 싸움이 됩니다.”
그는 1991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단다. “감방에서 사회주의 붕괴 소식을 들었어요. 내 가치 기준이 무너졌죠. 그때 허무의 심연을 봤어요.” 그는 이번에 낸 책에서 선승의 세계를 다뤘다. 선승의 깨우침도 허무의 심연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다. “고승들은 부처나 불도에 대한 학인의 식견을 깨버리고 심연 속으로 밀어 넣어요. 그다음 ‘이제 시작해 봐’ 합니다. 근본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죠. 거기서 답이 나오지는 않아요. 하지만 물음은 얻죠. 이게 중요해요. 저도 사회주의 붕괴 뒤 질문을 얻었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마르크시즘 바깥을 방황하고 다니고 있죠. 하하.” 이런 말도 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전에 마르크시즘에 대한 굉장히 강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이런 사회주의가 망하니 강한 의심이 생겼어요. 선승의 세계도 참선을 하려면 대신심과 대의심, 대분심을 갖춰야 한다고 하죠.”
30년 전과 지금,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면? “마르크시즘과 절연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많이 달라졌죠. 마르크시즘의 출발 전 문제의식은 받아들여요. 하지만 당을 통해 혁명하고 국가가 노동자 계급을 장악해 공산주의 사회로 간다는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아요.” 오지 않은 미래보단 현재가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현재의 시제 속에서 자본주의와 다른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라틴어로 ‘결합+선물’이란 뜻인 ‘코뮌’ 공동체 실험에 나선 이유죠.”
1980년대 ‘386운동권 대표 이론가’
91년 옥중 ‘사회주의 붕괴’에 허무
99년 ‘서사연’ 갈등 겪으며 불교 관심
2년새 불교 철학 관련 책 두권 펴내 “현시점 자본주의 대안적 삶 중요”
‘수유너머104’ 지식공동체 실험 계속 코뮌 공동체 수유+너머는 수유너머N으로 한차례 분화한 뒤 지난해 3월 수유너머104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그는 이곳을 지식공동체라고 했다. “연구자나 일반 직업인, 학생, 예술가들이 지식이나 공부를 통해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곳이죠. 자본주의와는 다른 관계를 현재 시제 속에서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활동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돈 때문에 어려운 적은 없어요. 공동체는 사실 친해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서로 익숙해지면 자본주의의 좋지 않은 습속이 나와요. 생각의 차이보다는 감정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기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거슬리잖아요. 이게 뒷담화로 이어져 상대 귀에 들어가면 회원들이 짝 갈라집니다. 그 결과는 연구실의 공동화죠. 공동체 최악의 적은 뒷담화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지식 공동체 활동을 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부는 친구와 같이해야 합니다. 지적 자극을 주죠. 들어주고 묻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할 얘기를 궁리해내고 이걸 글로 풀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과 함께 하는 공부는 이게 약합니다. 제가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수유너머에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어요. 그분들 덕분에 긴장감도 생기고 제 질문이 풀리기도 해요. 공동체는 힘들지만 안 하는 것보다 좋고 재밌어서 합니다.” 좀 더 원론적인 질문을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노인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입력장치가 고장 나고 출력장치만 가동하면 그게 바로 노인입니다. 보고 들어도 입력하려 하지 않고 또 아예 보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미 보고 들은 것만 반복해 얘기한다면 40대도 노인이죠. 입력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70대도 노인이 아니죠. 공부는 삶을 갱신하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해야 합니다.”
그가 보기에 공동체 활동의 본질은 ‘선물 증여’다. “회원은 회비도 내고 세미나 때 간식도 사고 밥도 해주고 강의도 합니다. 저도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합니다. 그게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미끼이거든요. 이를 통해 친구들에게 그들도 선물을 할 능력을 키워주죠. 선물도 해보지 않으면 못해요. 자신이 선물해줄 수 있을 때 바로 주인이 됩니다.”
수유너머104의 운영주체인 회원은 현재 40명 정도다. 20~50대가 주축이며 60대도 1명 있단다. 회원이 되려면 1년간 활동을 한 뒤 기존 회원 3명의 추천을 받아 4개월 인턴 회원 기간을 거쳐야 한다. 회원 되기가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하자 그는 “회원이 아니어도 활동엔 별다른 제약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원은 5만원 이상 회비를 내고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저도 방학 땐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방 일을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부만 하지 않는다. 함께 시위도 나간다. 사회 운동 참여의 기준이 있을까? “기준은 없어요. 누군가 제안을 하면 동의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참여하죠.”
‘학인 이진경’의 공부는 언제 시작됐을까? “부모님이 공부하는 분도 아니었고 형 누나도 없어 집에 책이 없었어요. 중학교 때 삼중당 문고본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는 니체와 카프카를 좋아했어요. 고교 2학년 때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는데 여러 번 읽어 책이 헤질 정도였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도 읽다 너무 어려워 포기했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고교가 입시에만 매달리던 시기는 아니었죠.” 외국어는 “영어 외에 독어와 프랑스어는 번역본과 대조해 읽을 정도는 되고 일본어는 읽고 말하기가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2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요가 강의도 한단다. “제가 그동안 책을 많이 냈잖아요. 원래 약골이었는데 요가를 한 덕분이죠.” 공익요원 근무 중인 아들도 현재 수유너머104 토요일 프로그램인 ‘청년을 위한 인문지능’ 세미나에 참여한단다.
그의 불교 첫 저서인 <불교를 철학하다>는 8천권가량 팔렸다고 했다. 요즘 인문학 출판 시장 분위기에선 꽤 선전한 셈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인문학이 지금 근본적인 위기에 빠져 있어요. 위기란 것도 몰라 위기를 넘어설 생각도 못 하고 있어서죠.” 왜? “책이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안 팔려요. 인문학 위기라고 했던 2003년 제가 쓴 <노마디즘>(상·하)이 1만5천 질 나갔어요. 2004년 제 경제학 책(<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만부가 나갔어요. 당시는 인문학 위기라고 했지만 어려운 책을 많이 봤어요. 지금은 넓고 얕은 지식만 팔려요. 학원 강사들이 알기 쉽게 요약을 잘해놓은 책만 나갑니다.” 말을 이었다. “(인문학책은) 표면적인 곳에서 깊게 들어가도록 당기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깊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도록요. 그게 인문학의 힘이죠. 그런데 지금은 표면만 통통 튀어 다닙니다. 너무 쉬운 답들만 있고 질문도 없어요.”
그가 표를 주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봐요. 경제정책은 문제가 있지만 이건 문 대통령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이후 누적된 문제여서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하기 힘들어요. 너무 쉬운 해결책을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이런 경제 난관들도 남북관계가 풀리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10대 그룹 자본 유보금이 600조가 넘는다잖아요. 남북관계가 열리면 굉장히 광활한 투자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가 쉽지 않은 데 잘 풀고 있어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믿고 나아가면서 교착상태를 풀어내기도 하잖아요. (한반도 문제 협상의) 주도권이 북미에서 남북으로 넘어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앞으로 공부 계획을 물었다. “존재의 존재론에 관심이 커요. 재작년부터 김시종 시인(1929~, 제주 출신 재일동포)을 본격 공부하고 있어요. 이 분을 직접 만나기도 해서 최근 이 분에 대한 책을 탈고했어요. 제목은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입니다. 일본 친구들과 함께 이 분의 시집도 번역했어요. 시집은 아직 출판할 곳을 구하지 못했어요. 존재론적 관점에서 문학 공부를 더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비조로 불리는) 용수(150?~250?)의 <중론> 공부도 더 해서 책을 낼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김시종 시인의 무엇이 그를 매혹했는지 메신저로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시종 시인의 시엔 심연을 본 자의 눈에 스민 깊은 어둠이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는 공중에 흩어져버린 시적인 삶의 조각들이 박혀있다. 또한 결코 가벼울 리 없었을 삶의 무게였을 텐데도 원한이나 미움 대신 놀라운 긍정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강하게 우리를 당기는 힘은 삶을 건 자의 시, 그렇게 삶이 걸린 시라는 점이다.’
내친 김에 하나 더 물었다. 가장 마음을 끄는 사상가는? “한 사람을 고르란 말은 좀 가혹하네요. 그래도 한 사람을 꼽자면 역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1925~1995)죠.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과 쉽게 도달하기 힘든 깊이, 같은 걸 봐도 어찌 이렇게 볼 수 있나 싶은 놀라운 독창성이 간결하고 강밀한 문장으로 쑤셔오거든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다른 삶, 다른 사회를 만들려는 혁명적 열정으로 발효되어 있다는 것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인터뷰 도중 웃고 있다. “제가 원래 웃음이 많은 편입니다. 하하.”
이진경 교수가 최근 낸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모과나무)과 2년 전 펴낸 <불교를 철학하다>(한겨레출판) 표지.
91년 옥중 ‘사회주의 붕괴’에 허무
99년 ‘서사연’ 갈등 겪으며 불교 관심
2년새 불교 철학 관련 책 두권 펴내 “현시점 자본주의 대안적 삶 중요”
‘수유너머104’ 지식공동체 실험 계속 코뮌 공동체 수유+너머는 수유너머N으로 한차례 분화한 뒤 지난해 3월 수유너머104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그는 이곳을 지식공동체라고 했다. “연구자나 일반 직업인, 학생, 예술가들이 지식이나 공부를 통해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곳이죠. 자본주의와는 다른 관계를 현재 시제 속에서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활동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돈 때문에 어려운 적은 없어요. 공동체는 사실 친해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서로 익숙해지면 자본주의의 좋지 않은 습속이 나와요. 생각의 차이보다는 감정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기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거슬리잖아요. 이게 뒷담화로 이어져 상대 귀에 들어가면 회원들이 짝 갈라집니다. 그 결과는 연구실의 공동화죠. 공동체 최악의 적은 뒷담화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지식 공동체 활동을 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부는 친구와 같이해야 합니다. 지적 자극을 주죠. 들어주고 묻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할 얘기를 궁리해내고 이걸 글로 풀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과 함께 하는 공부는 이게 약합니다. 제가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수유너머에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어요. 그분들 덕분에 긴장감도 생기고 제 질문이 풀리기도 해요. 공동체는 힘들지만 안 하는 것보다 좋고 재밌어서 합니다.” 좀 더 원론적인 질문을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노인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입력장치가 고장 나고 출력장치만 가동하면 그게 바로 노인입니다. 보고 들어도 입력하려 하지 않고 또 아예 보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미 보고 들은 것만 반복해 얘기한다면 40대도 노인이죠. 입력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70대도 노인이 아니죠. 공부는 삶을 갱신하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해야 합니다.”
이진경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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