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일본 ‘국민’은 패권 전쟁에서 탄생했다

등록 2018-10-18 20:05수정 2018-10-18 20:26

청일전쟁, 국민의 탄생-근대 일본의 첫 대외 전쟁의 실상
오타니 다다시 지음, 이재우 옮김/오월의봄·1만7000원

19세기말 동북아는 거대한 격변의 시대였다. 늙은 제국 청, 신흥 강국 일본, 극동 패권을 노리는 러시아와 유럽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불행히도 한반도는 그 한가운데 있었다. 1894년 중국(청)과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처음으로 맞붙은 청일전쟁의 주 전장도 무너져가던 왕조국가 조선의 땅과 바다였다. 그해 말 충남 공주 우금치에선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무참하게 학살 당했다. 중국 뤼순에서 역시 일본군이 처참한 살육극을 벌인 직후였다.

일본 역사학자 오타니 다다시 교수(센슈대)는 <청일전쟁, 국민의 탄생>이란 저작에서, 청일전쟁의 지정학적 배경과 전모를 모두 7장에 걸쳐 사태의 시간 순으로 꼼꼼히 되살린다. ‘전쟁 전야의 동아시아’에서 시작해, ‘출병에서 전쟁으로’, ‘한반도 점령’, ‘중국 침공’, ‘전쟁 체험과 ‘국민’의 형성’, ‘시모노세키 강화조약과 대만 침공’까지 전개 과정을 복기한 뒤, ‘청일전쟁이란 무엇이었을까’라는 평가까지 내놓는다. 일본군 지휘부가 조선과 뤼순에서 조직적 학살을 명령한 사실을 병사들의 일기로 확인한 대목은 섬뜩하고 처연하다.

1894년 청일전쟁 당시 황해 전투를 그린 고바야시 키요치카의 판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894년 청일전쟁 당시 황해 전투를 그린 고바야시 키요치카의 판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옮긴이가 꼽은 이 책의 미덕은 따로 있다. 오타니 교수는 2004년 저작인 이 책에서, 일본에서 근대적 의미의 ‘국민’이 형성된 계기가 바로 청일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일본이 청을 제압하고 조선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민중이 ‘국민’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일본 근현대사, 특히 미디어사 전공자답게 전쟁 당시 언론과 민중, 언론과 권력의 관계에 주목한다. 일본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청일전쟁을 문명국 일본과 야만국 청의 전쟁이라고 주장하며 언론을 통해 전쟁을 지지했다. 그의 “문야(文野)의 전쟁”론은 일본인의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자극하며 전쟁 협력과 전시동원 체제를 촉진했다.

청일전쟁 당시 극동 지역 각군 해군력의 비교. 군함 수 항목의 괄호(  ) 안은 수뢰정 수. 오월의봄 제공
청일전쟁 당시 극동 지역 각군 해군력의 비교. 군함 수 항목의 괄호( ) 안은 수뢰정 수. 오월의봄 제공

언론사들은 앞다퉈 종군기자를 파견했고, 일본인은 생생한 전황과 승전보를 접하며 ‘군인 천황’ 숭배에 젖어들었다. “지역 신문은 종군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위문품이었고, 전장과 지역 후방 사회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파이프였다. 이 파이프를 통해서 전장과 지역 후방 사회는 정보가 교환되어 서로를 자극했고, 전장의 체험이 일반화되어 지역 신문의 독자에게 공유됐다.” 이처럼 정치인, 지식인, 민간인이 하나가 되어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하는 ‘전쟁 체험’ 과정에서 근대 일본의 ‘국민’이 형성되어갔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책의 원제는 <일청전쟁>(2014)인데, 번역서 제목에는 원제에 ‘국민의 탄생’을 덧붙인 것도 옮긴이와 출판사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894년 청일전쟁 중 평양 전투를 그린 미즈노 도시가타의 판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894년 청일전쟁 중 평양 전투를 그린 미즈노 도시가타의 판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옮긴이가 이 책의 ‘단점’으로 지적한 대목도 날카롭다. 첫째,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조선과 청에 대해선 통사적 서술만” 하는 데 그쳤다는 점. 둘째, 조선사에 대해선 특정 저자의 저서에만 의존했는데, 예컨대 갑오농민전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단 동학’을 언급한 것은 일본 태생의 재일 조선인 학자 조경달의 <이단의 민중 반란>을 참조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