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제0호>에서 주인공 콜론나의 동료 기자 브라가도초는 이렇게 말한다. 에코는 이탈리아의 양대 일간지와 대표 주간지에 숨지기 직전까지 칼럼을 썼으며, 신문과 텔레비전 같은 뉴스 및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마지막 소설 <제0호>에서 사이비 언론의 가증스러운 행태에 주목한 것도 언론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우려의 결과였다.
<제0호>를 낸 출판사 열린책들은 에코의 거의 모든 저작을 모은 ‘에코 컬렉션’을 펴낸 바 있다. 그 가운데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책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에 신문 및 언론에 관한 에코의 생각들이 흩어져 있다.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은 에코의 학회 발표와 강연 원고를 모은 책인데, 표제 강연은 이탈리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문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신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주간지화’다. “일간지는 점점 더 주간지와 비슷하게 되었고, 버라이어티, 풍습, 정치 생활과 관계된 소문들에 대한 논의, 공연 예술계에 대한 관심에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의 장악력 확장 앞에서 일종의 자구책으로 주간지적 편집 방침을 택한 것인데, 그가 보기에 그것은 패착이다. 그보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뉴스들의 엄격하고도 신빙성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 에코가 생각하는 신문의 활로다. 말하자면 전통적 신문·언론관의 재확인인 셈인데, “전통적 의미에서의 신문은 아직도 근본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실은 칼럼을 골라 엮은 책 <민주주의가 어떻게…>의 제1부 ‘정보 매체들에 대한 논쟁’에도 신문 및 언론에 관한 글들이 여럿 실렸다. 이 글들에서 에코는 신문들이 텔레비전을 베끼고 다른 신문을 베끼는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오늘날 저널리즘의 지상 명령은 다른 곳에 이미 실린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실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신문들은 지금 다른 신문들에 대해 말하는 참고문헌 게시판이 되고 있다.”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레스프레소>에 기고한 말년의 칼럼에서 에코는 신문이 웹사이트를 비평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면을 웹사이트 분석에 할애해, 바람직한 사이트와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사이트를 가려 주어야 한다.” 일부 웹사이트와 에스엔에스(SNS)가 가짜 뉴스의 생산 및 전파의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발언이다. <제0호>를 낸 뒤 프랑스 신문 <르몽드>와 한 인터뷰에서도 에코는 “저널리즘은 가짜와 조작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사고의 획일화와 표준화에서 벗어나 비판 정신을 되살아나게 하는 저널리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