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범 외 7명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낙석주의’라고 쓰인 길을 지나다 실제 돌 맞는 것 같은 상황. 원하지 않는 호칭으로 불리는 일 말이다. ‘아줌마’로 불리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 자리 맡는 사람처럼 여겨지는가 해서 화끈거리고, 머리가 좀 허옇다고 ‘할아버지’라 불리면 서글프다. 한국어를 사랑한다고 외치다가도 애매하고 까다로운 호칭 문제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친해지고 싶은데 호칭 문제를 정리 못해 쭈뼛거리다 보면 ‘차라리 주민증 까자’ 말하고 싶고, 처음 가는 밥집 사장님한테도 ‘이모’라고 부르는 걸 보면 붙임성 좋다 생각하다가도 ‘이모’라는 살가운 호칭이 엉뚱한 자리에서 남발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어 호칭 문제에 관해 건설적인 고민을 해보자는 책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는 평소 호칭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의 경험을 살피고 그 사회적 맥락을 짚으면서 대안을 찾아간다. 지난해말 한겨레말글연구소의 연례발표회 때의 발제, 토론문을 개정, 증보한 책이다. 먼저 호칭 문제가 발생하는 영역을 구분해보자. 친분의 정도, 사적 관계냐 공적 관계냐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친근한 사적 관계인 가족·친구·선후배(1영역), 가깝지만 공적 관계인 일터의 선후배 동료(2영역),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사적으로 맺어지는 사교모임(3영역), 친분 없는 사무적 관계로 공공시설·가게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4영역). 3영역과 4영역의 호칭 해결 방법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한글문화연대 대표인 이건범 작가는 4영역에서의 공공호칭으로 손님들에게 ‘아버님’ ‘어머님’ 또는 ‘사장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미혼 남녀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므로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을 권한다. 3영역에서는 ‘쌤’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수직적 관계로 직함 위주였던 직장(2영역)에선 최근 새로운 호칭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노사관계가 대립적이었던 홈플러스는 사내 모든 직원들이 서로의 이름에 ‘님’을 붙이는 ‘님부르기 운동’을 노사합의로 결정했다.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문화로 이어져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앤디나 톰처럼 호칭 없이 불러도 되는 외국어 이름, 스스로 지은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호칭 민주화의 방법이 될 수 있다. 1영역에선 성별에 따른 차별이 최대 이슈다. “왜 10살 시동생한테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느냐” “남편은 우리 언니를 처형이라고 부르는데, 왜 나는 시댁 식구들에게 극존칭을 써야 하느냐” 등 여성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현실적 장벽이 높은 만큼 호칭의 평등화가 더 절실한 분야다. ‘둥둥’ ‘송송’처럼 부부끼리 별칭으로 부르고 조카들도 ‘둥둥 이모’ ‘송송 이모부’라고 부르는 방식도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물론 완벽한 대안이나 정답은 없다. 지난해 <한겨레>가 대통령 부인 이름에 ‘씨’를 붙일 것이냐 ‘여사’를 붙일 것이냐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여사’로 결정한 것을 놓고도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호칭에 대한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이미 혁명이 완성된 듯한 인상을 주는 서유럽과 북미 사회도 새로운 쟁점이 나타나면 기존의 언어 현상을 되돌아보며 반성한다”며 “그들의 사회 혁신의 에너지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호칭에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불편함에 공감한다면, 창의적인 의견이 수용된다면 문화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