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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안과 자유의 외줄 위에서 균형 잡기

등록 2018-11-01 19:58수정 2018-11-02 14:33

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은행나무·1만3000원

‘헬조선’이 싫어서 떠난다는 소설 <한국이 싫어서>도 있지만, 외국인의 한국 체험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인기몰이 중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나 결혼 이주 여성을 포함해 한국에 사는 이방인은 더 이상 이채로운 존재가 아니다.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사진)의 에세이 <한국에 삽니다>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서울 이태원에서 생활한 1년을 일기 형식에 담은 책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과 한국 사회, 고향으로부터 거의 대척점에 해당하는 곳에서 사는 느낌 등을 문학적 문장에 담아 2016년 콜롬비아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책이다.

“낮 동안 내 기분은 외줄 위에 선 것처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렁거린다. (…) 월급이란 걸 받아본 지 5년이 되었다. 5년. 한때는 연금과 건강보험도 있었다. 아 끔찍해라, 이 일기가 예배당의 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불평을 늘어놓다가 눈물 콧물 흘리며 끝나는 곳.”

‘한국: 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써내려간 메모들’이라는 스페인어 원제의 출처와 맥락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고향과 모국어라는 안정적 기반을 버리고 낯선 땅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삶을 꾸려가는 이의 착잡한 심사가 짐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생활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어떨 땐, 납으로 된 옷을 입은 것만큼 무겁다”고 불편을 토로하면서도 이내 “그런데 이것이 바로 콜롬비아에 살았을 때 그토록 바라던 것이다. 반대편 땅의 끝에 존재하는 것. 주름 속에 존재하는 것. 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말이다”라며 자신이 선택한 불편과 불안의 긍정적 측면을 떠올린다.

익숙한 환경에서 멀어졌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서울은 명상을 위한 넓은 들판 같아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듣기 위해서 노력하고, 36년을 산 내가 이 땅 위에서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서 고민한다.”

이렇듯 불안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애쓰는 한편 그는 한국 사회의 특징적 면모를 날렵하게 잡아내기도 한다. 한반도 바깥에서는 전쟁 위기설이 파다한데도 정작 안에서는 지극히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풍경, “한국이 세계에 물려줄 최고의 발명품” 배달 문화와 “한국 유일의 진짜 도시 부족(urban tribe)”이라 할 등산객, 후루룩거리며 먹는 냉면의 맛과 “추위에 완벽한 음식” 김치찌개, 건달 영화에서 배운 욕설 “×발!” 등을 통해 그는 한국 사회 속으로 조금씩 더 들어온다.

<한국에 삽니다>를 쓴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오른쪽)와 이 책의 번역자이기도 한 그의 한국인 부인 이수정씨.
<한국에 삽니다>를 쓴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오른쪽)와 이 책의 번역자이기도 한 그의 한국인 부인 이수정씨.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 강의를 하는 그가 접한 한국문학에 관한 인상도 흥미롭다. “모두 숨이 막힐 듯한 사실주의에 허덕”이며 “뻔한 이념적 골조”에 치우쳤다는 진단, “대부분 단편소설로 데뷔한다는”, “내가 보기엔 말이 안 되”는 출판 시스템에 대한 개탄이 있는가 하면, 윤흥길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대한 평가, 김승옥 단편집 <무진기행>의 스페인어 번역본에 대한 비판 등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부인인 공연기획자 이수정씨가 번역을 맡았다.

최재봉 기자, 사진 은행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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