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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광수의 ‘무정’, 순한글 연재 덕에 두 토끼 잡았다”

등록 2018-11-05 05:00수정 2018-11-05 22:05

세계한글작가대회 하타노 세츠코 발표

한국 근대 장편소설 탄생 100주년
‘무정’ 일본어 번역자 하타노 교수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한글 원고
국한문 표기 벽 깨트리면서
지식인·서민층에 공감대 형성”
하타노 세츠코
하타노 세츠코

이광수의 <무정>(1918)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로 평가된다. <무정> 이전에 나온 <혈의 누>(이인직) <금수회의록>(안국선) 같은 신소설들의 내용적·형식적 전근대성을 극복하고 비로소 서구적 기준에 부합하는 근대 장편소설의 문을 연 작품이 <무정>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한국 근대 장편소설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무정>의 일본어 번역자이자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의 저자인 하타노 세츠코(사진) 니가타현립대학 명예교수는 <무정>을 통해 이광수가 국한문 혼용체 문장에서 한글 문장으로 변신을 이루었다고 지적했다. 하타노 교수는 7일 오전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손해일) 주최로 열리는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한글 창작의 길-이광수와 3·1운동’이라는 제목의 강연에 나서 이런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미리 배포된 강연 원고에서 하타노 교수는 김영민 연세대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사실 <무정>은 한글이 아니라 국한문소설로서 연재되도록 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던 <매일신보>는 <무정> 연재를 앞두고 1916년 말에 내보낸 연재 예고에서 이 소설이 국한문으로 씌어진, “독자를 교육 있는 청년계에서 구하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1917년 1월1일 연재가 시작되면서, 국한문은 신문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무정>은 한글로 쓴다는 작가의 편지 일부가 사죄문으로 함께 신문에 실렸다.

이광수는 126회에 걸쳐 연재된 <무정>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약 70회분을 방학을 이용해 단숨에 써서 신문사에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하타노 교수는 최초의 원고는 국한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대중 구독자가 떨어져나갈 것을 걱정한 신문사가 (연재) 직전에 방침을 변경하고 작자의 편지를 날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타노 교수는 자신이 <무정>을 번역할 때, “도중에 갑자기 훌륭한 묘사 대목이 나와 놀랐다”며 “내가 놀랐던 묘사 대목은 한글로 쓰기 시작한 첫회였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앞부분을 국한문 혼용체로 썼던 이광수가 신문사의 방침 변경에 따라 이 부분부터 순한글 문장을 구사하려 노력했다는 것. 그가 가리킨 연재 73회의 일부는 이러하다.

“형식은 정신없이 집에 돌아왔다. 로파가 웃통을 벗고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먹는다. 억개와 팔굽이에 뼈가 울룩불룩 나오고 주름 잡힌 두 젓이 말라붙은 듯이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두어 줄기 땀이 마치 그의 살이 썩어서 흐르는 송장물 같은 감각을 준다.”

하타노 교수는 “한글로 표기됨에 따라 <무정>은 대중에게도 읽혔고, 내용의 근대성 덕분에 한글 소설을 읽지 않았던 지식인 청년에게도 읽혔다. 표기의 벽을 깨뜨려 지식층과 서민층 두 계층이 비로소 동일한 작품을 읽고 감동했던 것”이라고, 한글 소설 <무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세계한글작가대회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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