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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등록 2018-11-09 06:00수정 2018-11-09 19:06

2017 맨부커상 수상작 ‘바르도의 링컨’
링컨 대통령의 어린 아들 죽음 소재
망자들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형식실험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5800원

<바르도의 링컨>은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60)의 장편소설로 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1996년 첫 단편집을 낸 이래 단편에만 주력해온 손더스의 첫 장편으로 관심을 모았는데, 과감한 형식 실험과 독창적인 주제로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들었다. “문학적 환각제 같다”(<이브닝 스탠더드>), “거의 은총을 받은 느낌”(<파이낸셜 타임스>), “완벽하게 독보적인 작품”(BBC 기자 리베카 존스) 같은 평은 그 일부다.

‘바르도’란 티벳 불교 용어로, 사람이 죽은 뒤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그 기간은 보통 49일이며, ‘49재’라는 불교식 장례 풍습이 그와 관련된다. 또 다른 불교 용어 ‘중음’(中陰) 또는 ‘중유’(中有)가 이것과 비슷하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열한살짜리 아들 윌리 링컨이 1862년 2월 장티푸스로 숨을 거둔다. 참척의 아픔을 견디다 못한 아버지 링컨은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몇 차례나 아들의 무덤을 다시 찾았고, 방부 처리해 관에 담긴 주검을 안아주기도 했다. 손더스의 소설은 이 일화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바르도라는 시공간 또는 모종의 차원을 무대로 삼으며, 윌리를 비롯해 이 “공동체”에 머무는 이들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아직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이승의 삶에 미련과 원망이 남은 이들이 이곳을 고집한다. 주검을 ‘병자-형체’로, 관을 ‘병자-상자’로 부르는 데에서 자신을 여전히 ‘죽음 이전’이라 믿고자 하는 이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전 그곳”, 즉 죽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아버지 링컨의 묘지 방문은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싸늘한 주검일지라도 “내 품에서 아이를 느껴보는 게 나에게 아주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다시 오겠노라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가고, 그런 약속은 당사자인 윌리만이 아니라 바르도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도 희망의 근거가 된다.

소설은 바르도 구성원들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졌다. 노벨상 수상 작가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 또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는 형식적 장치다. 아버지 링컨을 비롯한 ‘바깥’ 사회의 이야기는 책과 서간문, 신문 기사 등으로 보완된다.

링컨 대통령의 어린 아들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소설 <바르도의 링컨>으로 2017년 맨부커상을 받은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은 “링컨 부자는 이 작품에서 함께 바르도에 들어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David Crosby
링컨 대통령의 어린 아들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소설 <바르도의 링컨>으로 2017년 맨부커상을 받은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은 “링컨 부자는 이 작품에서 함께 바르도에 들어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David Crosby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엄연한 터에, 윌리와 바르도 구성원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리는 만무한 일. 더구나 당시는 노예해방을 둘러싼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여서 대통령 링컨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사사로운 정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아버지 링컨은 결국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며, ‘착한 아들’ 윌리 역시 아버지의 뜻을 좇기로 한다. “여러분, 우리는 죽었어요!” 바르도의 ‘왕자’와도 같았던 윌리가 구성원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 그것은 바르도라는 “운좋게 이루어진 집단 공동-거주”에 울리는 조종과 다름없었다.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하다는 사실, 모두가 어떤 슬픔의 짐을 지고 노동한다는 사실, 모두가 고난을 겪는다는,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을 택하든 모두가 고난을 겪고 있다는(…)”

링컨의 이런 깨달음은 삶을 고해(苦海)로 파악하는 불교의 생사관과 통한다. 108개 장으로 이루어진 <바르도의 링컨>의 구성은 어쩐지 불교에서 말하는 백팔번뇌를 떠오르게 한다.

“선이라든가 형제애라든가 구원 같은 게 존재한다면, 또 그런 걸 얻을 수 있다면, 거기에는 가끔 피, 복수, 전에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닥치는 몸이 저려오는 공포, 무정한 압제자의 추방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기 그대로 있겠습니다. 복수를 할 때까지. 누군가에게.”

윌리의 ‘폭로’ 이후 바르도의 구성원 거개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음 차원으로 떠나가지만, 흑인 노예 출신인 엘슨 파웰은 이렇게 말하며 바르도에 머물겠다고 선언한다. 핍박받는 흑인 노예를 대표하는 그에게는 이승에서 아직도 청산해야 할 ‘빚’이 있다. 바르도에서 그가 남군 출신 백인 중위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 참척의 아픔을 딛고 링컨이 살림(=노예해방)을 위한 죽임(=남북전쟁)에 임하겠노라 다짐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균형감각이 보인다. 삶이란 고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필요한 싸움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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