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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화

등록 2018-11-09 06:00수정 2018-11-09 19:13

[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불량한 자전거 여행
김남중 글, 허태준 그림/창비(2009)

평생 땀 흘리는 걸 싫어하며 살았다. 자세는 늘 꾸부정했고 어깨 펴고 다니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자연 나이보다 이르게 어깨와 목에 통증이 찾아왔다. 한번 뭉치면 쉬이 풀리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결국 내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만 한 해결책은 없었다.

김남중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보기 드물게 땀 냄새가 나는 동화다. 운동장에서 전력질주라도 한 기분이다. 주인공 호진이가 삼촌 그리고 8명의 어른들과 11박12일 동안 광주에서 속초까지 자전거 순례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담았다. 동화를 읽어보면 작가가 얼마나 자전거를 사랑하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오르막의 고통과 그 저녁 감칠맛 나는 삼겹살의 맛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동화다. 읽고 나면 당장 자전거가 타고 싶어진다.

열세 살 호진이가 자전거 순례에 나선 건 우연이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겠다고 하자 호진이는 우발적으로 가출을 결심한다. 엄마 아빠가 못 찾는다면 어디든 좋았다. 엄마는 평소 삼촌을 닮으면 큰일이 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삼촌에게 가면 확실한 복수가 될 테다.

막상 찾아간 삼촌은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열다섯 번째 순례를 시작한 참이었다. 공주에서 시작해 부산에 온 넷째 날 삼촌은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받는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된 삼촌은 그날 호진이에게 자기 자전거를 내민다. 그리고 이제부터 심부름 말고 자전거를 타라고 한다. “아무 생각 말고 자전거만 타. 지금 너한테는 이게 필요해.” 집을 떠나기 전 호진이는 고민이 많았다. 학원이 지겹고 공부가 싫었다. 이혼하겠다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한데 자전거를 타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오늘 달릴 일만 걱정이 됐다. 내일 일은 걱정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은 금세 잊혔고 밥 먹을 때까지 얼마나 남았나만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 길 위에서 호진이는 어릴 때부터 도둑질이나 하고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변변한 직업도 없다던 삼촌의 진짜 모습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 순례를 떠나온 여덟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가족처럼 친해진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어울리는 법을 몸으로 배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할까. 아니, 동화가 들려주는 순간순간의 집중이 뭔가를 알아차릴까, 삼촌이 했던 말들, “땀은 고민을 없애주지. 자전거는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하지” 같은 말을 이해할까,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자전거를 타듯 오늘 하루 달릴 일만 생각하며 사는 법을 새겨들으면 좋을 텐데 싶었다. 한데 아니다. 동화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됐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뭔가를 동화에서 만났을 테다. 동화를 읽고 정말로 공감했다면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든 자전거를 타며 굵은 땀을 흘린 호진이가 떠오를 테다. 그거면 되었다. 그럼 언젠가는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탈 테다.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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