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송효정·박희정·유해정·홍세미·홍은전 지음온다프레스·1만6000원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거울은 곧 타인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본다. 거울을 보지 않으려 함은, 내보이지도 ‘나’를 보려고도 않는 거부의 표현이다. “화장실 갈 때만 겨우 움직였는데 그때도 거울 쪽은 안 보고 슥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후원을 받아서 수술할 기회가 생겼는데, 조건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찍는 거였어요.…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그냥…울었던 것 같아요.”(정인숙)
화상은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한다. 삶과 죽음을 넘나든 뒤 깨어났을 때 앞에 놓인 것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된” 때는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순간이다. “사고 뒤 처음으로 제 사진을 찍어서 봤어요. 이게 참…이 모습으로 내가 살아야 하나…”(정범식)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는 중증 화상을 겪은 일곱 사람과 가족이 사고 이후를 살아내온 이야기다. 사고의 기억과 고통스런 치료, 절망 그리고 다시 ‘나’를 찾는 과정을 담은 구술 기록이며,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나를 보라’는 외침이다.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을 기록해온 다섯 명의 작가가 이들을 인터뷰했다.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엔가 눈물이 고인다.
화재를 당했을 때 이들은 초등학생·배달식당 운영자·전기기술자·대학원생·봉제공장 노동자·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집·가게·사무실·전봇대·해저터널 등에서 화상을 입었다. 화재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14년 현재 화상 진료를 받는 사람은 50만5278명. 소방청은 2017년에만 1290명의 화상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고 경위는 다르지만 화상 경험자들의 한결같은 얘기가 있다. 화상 부위에 감은 붕대를 풀고 가득 찬 고름을 없애기 위해 호스로 물을 뿌려 세척하는 치료가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점이다. “치료실에 가서 고통받을 걸 생각하면 딱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거든요. 치료사가 제 이름을 부르면 몸에서 벌써 신호가 와요…너무 무서우니까…너무 아파 까무러칠 때도 있었어요.”(엄문희)
치료실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통증 가운데 ‘환상통’이 가장 심하다는 말이 있다. “절단이 돼도 신경은 다 살아 있거든요…처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을 때만 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신경이 다 살아 있었어요. 손은 보이지 않는데 손가락도 손목도 다 움직인다고 느끼는 거예요. 게다가 너무 아픈 거예요.”(송영훈)
화상 치료에는 수십 차례의 수술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환자와 가족은 지친다. “병실이 8층이었어요. 하루는 저도 지치고 아이도 지치고…애랑 매일같이 싸움해야 하니까…‘너랑 나랑 죽자 그냥.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견디느니 지금 여기서 너랑 나랑 죽자.’ 그러고는 창문을 열었어요…엄마로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전나영의 어머니 송순희) “뛰어내리려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왼팔이 없으니까 난간을 못 넘어가겠는 거예요. 팔이 있어야 짚고 넘어가는데…”(송영훈) 인터뷰에 응한 다수가 수면제를 털어넣는 등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연을 얘기한다.
화상은 한차례 수술과 치료에만 몇천만원이 든다. 병원에 3년 있으면 10억원이 넘는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거나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집을 팔아야 한다. “병원에서 1년6개월 정도 되니 아빠가 퇴원하라고 하더라고요… ‘자식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무리 나에게 애정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아직 환자인데 치료도 안 끝났는데 어떻게 퇴원하라고 할 수 있어.’ 울고불고 아빠를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김은채) 이들의 얘기는 한국사회 의료복지 체계의 허술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고로 숨진 가족들(정인숙의 아들, 최려나의 엄마)에 대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말한다.
육체의 고통이 진정되면 타인의 시선,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상처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거든요. 그러면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나오면 안 될 것 같고, 죄 지은 사람 같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지는 거예요. 그런 제 자신이 싫어지는 거예요.”(최려나) “전철 같은 데 타면 시선이 막 꽂히죠. 어떤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는지 쯧쯧거리기도 하고요. 그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정말 기분 나쁘거든요…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제가 나영이 옆에 붙어 있는데도 ‘괴물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아이를 붙잡아놓고 얘기하죠.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애 기분이 어떨 거 같애?…애는 그냥 다쳐서 흉이 생긴 거야…그러지 않으면 좋겠어.’ 일부러 나영이가 있는 데서 얘기하죠.”(전나영의 어머니 송순희)
이들은 곁에 있는 다른 화상 환자들을 만나면서 상처를 직시했다. “어떤 여자분이 있었는데 팔이 하나 없는 거예요. ‘얘기 좀 하고 싶어요’ 하면서 말을 걸었어요. ‘얘기하세요’ 하시더라고요. 난생 처음 보는 분을 붙들고, 그냥…엄청 울었어요.…그분이 ‘저를 보세요. 저는 여자인데 얼굴에 화상도 입고, 팔도 없잖아요. 그래도 어떡해요.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위로해주더군요.”(송영훈)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화상 환자들과 나누는 멘토링을 하고, 집 밖으로 나가며 자신감을 찾아갔다. 친친 몸을 쌌던 옷을 벗고, 여름에는 민소매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머리의 흉터를 가린 모자도 벗었다. “‘그래, 나는 나다. 그러니 당신이 바뀌어라. 나를 예전의 나로 봐달라’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저부터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사랑해야 하잖아요.”(최려나) “이쁘게 봐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거야. 있는 그 모습.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봐줘야 해.”(정범식의 아내 길영미가 남편에게)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라는 외침은 문을 잠그고 있는 화상 경험자들을 향하고, 동시에 화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을 향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최려나, 정인숙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이들은 여러 사람 앞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고통이 깊을수록 삶도 깊다. 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 이유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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