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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학과 법, 견원지간이어야만 할까

등록 2018-11-16 06:02수정 2018-11-16 20:05

남형두 교수 편저 ‘문학과 법’ 출간
임헌영, 김영란, 정과리 등 여섯필자
표절, 필화, 저작권 등 쟁점 다뤄
문학과 법
남형두 엮음/사회평론아카데미·1만6000원

문학과 법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소 닭 보듯 서로에게 무심한 관계도 아니다. 둘은 종종 피치 못할 관계를 맺는데, 그것은 흔히 적대적이고 원한에 사무친 것이기 십상이다. 현실에서는 법이 문학을 규제하고 억압하기 일쑤이며, 창작과 비평의 영역에서는 거꾸로 문학이 법을 조롱하거나 단죄하는 사례가 잦다.

문학과 법의 이런 불편하고 불유쾌한 관계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둘 사이에 건전한 토론과 생산적 협력은 불가능한 것일까. 저작권법 전문가인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엮고 쓴 책 <문학과 법>은 이런 궁금증과 모색을 담았다. 남 교수가 2017년 2학기 대학원에 개설한 ‘문학과 법’ 강좌에 외부 강사로 참여한 5명과 남 교수 자신의 강의를 토대로 쓴 글들이 묶였다.

정명교(필명 정과리) 교수 ⓒ김승범
정명교(필명 정과리) 교수 ⓒ김승범
“문학과 법의 지향은 근본적으로 상호적대적이다. 법이 현존하는 가치들을 가다듬으며 보호하는 데 비해, 문학은 세속의 가치들을 부정한다. 법이 현실의 편이라면 문학은 다른 세상의 편이다.”

정명교(필명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설명마따나 법이 현실 추수적 내지는 보수적이라면, 문학은 일탈적이며 진보적인 속성을 지닌다. 양자의 충돌과 대립은 일견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법을 상대로 한 문학의 싸움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한가지 단서를 단다. “그 싸움은 초월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내재적인 방식으로, 즉 공동체의 원리 안에서 공동체를 변모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의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칫 법을 문학 위에 놓는 발언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은 테드 창, 어슐러 르귄 등의 소설과 미국 법원 판례 등을 인용해 가며 문학과 법의 바람직한 관계를 검토한다. 그의 논의는 마사 누스바움의 책 <시적 정의>에 크게 기대는데, “계량적이고 기계적인 합리성보다는 ‘인간적이고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공적 합리성 개념’이 공적 추론에 더 기여할 수 있다” “시적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은 문학적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와 같은 대목이 특히 그러하다. 윤혜준 연세대 영문과 교수는 <오만과 편견> <위대한 유산> 같은 영국 소설을 통해 “문학과 법이 늘 서로 적대관계에 서 있을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윤혜준 교수
윤혜준 교수
문학과 법이 특히 첨예하게 부닥치는 전장이 필화와 표절 논란이다. 편저자 남 교수와 문학평론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가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남 교수는 같은 법이라도 형법과 저작권법이 문학작품과 문인을 대하는 지향점과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가령 당대 법질서에서 음란물로 유죄판결을 받은 소설 <북회귀선>이 저작권법상으로는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음란성 여부의 판단 기준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며,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끊임없이 외부의 간섭, 당대의 보편적 가치관 또는 윤리, 나아가 법규범과 갈등을 빚으며 발전하고 성숙해 왔다”는 점에서 “법의 적용과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정끝별 교수
정끝별 교수
정끝별 교수는 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작품 ‘자유’, 기형도 시 ‘빈집’과 러시아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의 ‘잘 있거라’처럼 영향과 표절의 위태로운 경계 위에 있는 작품들을 접하며 느꼈던 당혹감에서부터 글을 시작한다. 변명의 여지 없이 분명한 표절 사례들도 있지만, “명백한 표절과 방법적 표절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표절 의혹을 제기하거나 판정할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남형두 교수
남형두 교수
편저자 남 교수 역시 책 말미에 ‘부록’으로 덧붙인 글에서 신경숙 단편 ‘전설’을 둘러싼 표절 논란을 다룬다. 그는 윤지관과 남진우 등의 작업을 겨냥해 “다른 시대, 다른 콘텍스트의 사례를 끌어모은들 희석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신경숙 소설이 미시마 유키오 단편 ‘우국’을 표절했는지 판단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두 소설에 모두 나오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와 같은 구절이 “현저히 유사한 표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신경숙이 (미시마를) 차용하면서 그것을 충분히 변용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 한편 임헌영 소장은 푸시킨, 이병주, 정공채, 남정현 등이 겪은 필화 사건을 돌이키면서 “필화는 그릇된 지배 이데올로기를 고수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행사하는 ‘국가폭력’의 한 형태”임을 강조한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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