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외 지음/걷는사람·1만2000원 ‘무민’은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의 만화와 소설로 잘 알려진, 하마를 닮은 캐릭터.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족 트롤에 속한다. 이장욱의 짧은 단편 ‘무민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트롤 무민은 “채식주의자에 반인육주의자”로 나온다. 그렇다는 것은, 주인공 ‘나’를 비롯한 다른 트롤족은 사람 고기 인육을 즐겨 먹는다는 뜻. “인간은 명백한 유해 종이므로 각종 대책을 통해 번식을 막는 것이 좋”은 터에 “이 생물들을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는 일은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은 냉장고에 보관한 사람 머리통에 달린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은 일을 계기로 인육 먹기를 포기한다.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생물을, 어떻게 식용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이장욱의 소설 제목을 표제로 삼은 합동 소설집에는 열여섯 작가가 참여했다. 최근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동물권을 공통 주제로 삼되 작가별 개성을 한껏 살린 작품들이 한데 묶였다. 동물권이 새삼 의제가 된 것은 인간과 나머지 동물 사이에 위계 또는 목적-수단의 관계를 설정하는 인간중심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에 참여한 여러 작가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시점을 택한 것은 그런 인간중심주의를 뒤집어 보기 위함일 것이다. 구병모(‘날아라, 오딘’)는 폭탄을 몸에 두르고 탱크 폭발 작전에 투입되는 개의 자리에 인간을 대입시키고 그 인간을 개가 조련시키는 상황을 설정하며, 김은(‘오늘의 기원’)은 부화한 지 70일 만에 도축되는 닭의 시점을, 태기수(‘랑고의 고백’)는 동물원 고릴라 랑고의 시점을 택해 인간과 세계를 관찰한다. 태기수의 소설에서 “털 없는 존재와 온몸이 털로 뒤덮인 내가 아무런 경계 없이 자유로이 뛰노는 장면”은 랑고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되고 만다. 동물권에 관한 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뜻이겠다. 정세랑의 ‘7교시’는 200년 뒤의 미래를 배경 삼은 에스에프. 이 세계에서는 환경주의와 생명권이 상식이 되었고 배양 단백질이 온갖 고기를 대신하게 되어 더 이상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런데 도심을 ‘압축’해 나머지 면적을 자연에 되돌려주고 출산을 억제함으로써 인구를 계속 줄여나가는 이 세계가 생태주의 유토피아인지 또 다른 디스토피아인지 경계가 모호해 보인다. 이밖에도 권지예와 김봄, 황현진 등은 반려 동물과 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그렸고, 위수정(‘검은 개의 희미함’)은 동물구조협회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주란(‘겨울은 가고’)은 가축 대량 살처분을 담당했던 공무원의 자살을 다루었다. 이순원의 ‘새 식구가 오던 날’은 소와 사람이 일체가 되다시피 진행되는 송아지 출생 과정을 정밀하고 따뜻하게 묘사함으로써 전통 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동물권에 관한 오랜 지혜와 실천을 보여준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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