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지음/따비·1만8000원 “미싱대에 앉아서/ 아파오는 허리를 만지다가/ 문득 창 사이로 비껴든 하늘을 보았다/…/ 소아마비 철이를 보며/ 의사가 되려 했고/ 예쁘고 고운 선생님도 되고 싶던 그 시절/ 나는 시방 하늘과 멀리 떨어져/ 구멍 난 살림을 꿰매는 미싱사가 되었다.” (정빈시, ‘그날을 기다리며’) ‘의사가 되고 싶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꿈이 대부분 공장에 머물던 시절, 노동자들이 사람을 만나고 공부를 하며 숨통을 텄던 몇 안 되는 공간은 다름 아닌 야학이었다. 1890년 세천야학교를 시초로 1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난한 노동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야학은 1970년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다면 원이 없겠다’고 소망했던 전태일의 분신 이후 전국에 들불처럼 번졌다. 이 시기 대학생 신분으로 야학에서 활동했던 저자는 랑시에르가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전 노동자들이 시인, 화가와 같은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 꿈꾸었던 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밤’이라고 부른 것에 빗대, 야학을 노동자들의 ‘해방의 밤’이라고 지칭한다. 1987년 이후 야학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공간들이 늘어나면서 야학을 찾는 노동자도 줄어든다. 그러나 저자는 노동야학은 사라졌지만, “인간을 위한 노동과 학습을 되찾기 위한 야학의 문제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여전히 10대의 파견 현장 실습생과 이주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을 당하고, 직장에서의 갑질과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 노동야학의 역사를 짚고, 새로운 노동교육을 고민하면서 ‘해방의 밤’을 모색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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