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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숙부 다산·남편 황사영에 가려진 ‘관노 난주’ 궁금했죠”

등록 2018-12-02 14:47수정 2018-12-03 20:19

김소윤 작가 제주 4·3평화문학상
정약현 맏딸 삶 그린 소설 <난주>
남편 백서 사건으로 37년간 제주 유배
남편은 처형, 어린 아들과도 생이별
노비 신분으로 약자 돌보는 삶 주목
“‘임꺽정’ ‘토지’ 같은 소설 쓰고싶어”
지난 11월30일 제주 대정에서 김소윤 작가의 소설 <난주>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지난 11월30일 제주 대정에서 김소윤 작가의 소설 <난주>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정약용·약전 형제의 유배 생활과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처형당한 그들의 조카 사위 황사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았는지는 그만큼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황사영의 부인인 정난주가 바로 그런 인물이지요. 정난주와 같은 주변인의 삶도 가치 있고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7천만원 고료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난주>(은행나무)의 작가 김소윤은 “정난주는 나약한 여자이자 애절한 엄마, 외로운 아내였을 것 같다”며 “그럼에도 그가 특별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작은 재능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정난주의 묘가 있는 제주 대정의 한 카페에서 열린 <난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정난주(1773~1838)는 다산 큰형인 정약현의 맏딸로, 1801년 남편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처형된 뒤 관노가 되어 제주로 보내졌다. 제주로 가던 길에 두 살짜리 아들 경헌을 추자도에 남겨두었으며, 오씨 집안에서 자라난 경헌의 후손들이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난주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김훈 선생님의 소설 <흑산>을 읽으면서였습니다. 양반에서 노비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신분 추락을 겪은 사람이 제주에서 37년 동안 어떤 삶을 살았길래 사람들에게 존경 받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난주>의 작가 김소윤이 제주 대정에 있는, 소설 주인공 정난주 마리아의 묘를 찾았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난주>의 작가 김소윤이 제주 대정에 있는, 소설 주인공 정난주 마리아의 묘를 찾았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난주>는 실존인물 정난주의 삶의 큰 틀을 좇으면서 관노 신분으로 제주에서 보낸 37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되살려낸다. 양딸을 키우고, 별감 김석구 집안의 유모로 김석구의 두 아들을 정성으로 돌보며, 의술 서적을 통해 획득한 의학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환자들을 치료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구휼소를 세운다. 침을 놓는 상인 정방호와는 환자 치료에 힘을 합하면서 각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제주 땅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정난주는 아들 경헌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말년에 난주가 추자도에 건너가 그토록 그리던 아들과 재회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대목이 정난주가 어린 아들을 떼어놓고 가면서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었어요. 저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사실 그 장면에서 정난주가 하는 말은 부모님이 제게 자주 하신 말씀이고, 저도 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소설 속 난주가 어린 아들에게 하는 말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나는 네가 황사영, 정난주의 아들이 아닌 경헌 네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양반도 천출도 아닌 이 땅을 살아가는 보통의 양민이 되어, 때론 주리고 고통받겠으나 강인함으로 살아남아 끝끝내 또 다른 생명을 일구어가는 그러한 사내로 말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거라. 태생에도, 사상에도, 신앙에도….”

김소윤은 “관노가 되고 어린 아들과 헤어진다는 게 정난주로서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 격려 덕분에 끝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며 “결국 난주를 살게 한 힘은 신앙이 아니라 인간다운 고귀함,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소윤은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당선했다. 장편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와 단편집 <밤의 나라>를 펴냈다. 그는 “역사소설은 처음 썼지만, 이번 책을 쓰면서 역사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며 “<임꺽정>과 <토지>, <혼불>처럼 서사성이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구사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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