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끝이라면
조용호 지음/작가·1만5800원
<여기가 끝이라면>은 소설가이자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인 조용호(
사진)의 인터뷰집이다. 2014년부터 5년간 만난 문인 100명의 이야기와 발언이 담겼다.
책 제목은 지난 8월에 작고한 평론가 황현산의 말에서 가져왔다. 인터뷰를 한 시점은 2015년 8월. 인터뷰이에게 담도담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중인 무렵이었다. 그는 그 뒤 일단 회복되어 글을 계속 썼고 공직을 맡기도 했지만, 암이 재발돼 다시 투병하다가 결국 세상을 떴다. 인터뷰를 할 때 고인이 그런 결말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말은 죽음 앞에서도 담담하고 당당한 정신의 높이를 보여준다.
“원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여기가 끝이라면, 여기까지 왔다는 비석 하나는 세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비석’을 ‘존재 증명’으로 이해한다면, 바로 이 책을 포함해 그를 기리는 비석은 도처에 차고 넘친다 하겠다.
역시 올 10월에 별세한 평론가 김윤식도 2015년 10월에 인터뷰를 했다. 팔순을 맞아 제자들이 200여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을 가지고 마련한 기획전시가 계기였다. 지난해 초 별세한 소설가 정미경은 남편인 화가 김병종 교수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터뷰에 응한 셈이 됐다. “생물학적 삶을 연장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 사람의 문학적 삶은 사력을 다해 연장시키고 싶습니다”라 말하는 남편의 사랑이 눈물겹다. 제자들의 기획전도 남편의 다짐도 모두 비석이 아니겠는가.
한강의 소설을 두고 “깊은 물속에서 힘겹게 숨을 참는 듯한 낮고 어두운 풍경”이라 쓰거나 박상순의 시를 논하면서 “그의 시에서 슬픔과 고독은 눅진하거나 질척거리는 범상한 감정이 아니라 벼리고 깎아낸 미니멀한 상징으로 내재한다”고 말할 때, 독자는 인터뷰어가 자기만의 문장과 스타일을 지닌 소설가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법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인터뷰이들과 교감과 신뢰를 바탕 삼아 평소 듣기 힘들었던 고백을 끌어내는 대목들이다. 신경림 시인이 젊은 시절 시보다는 소설 습작에 열심이었고, 소설가 방현석이 중학생 때 씨름 꿈나무였으며, 점잖은 평론가 권성우가 학생 시절 친구들이 원을 그린 가운데 동급생과 일대일 격투를 벌인 일이 있고, 차분하고 단정해 보이는 손세실리아 시인에게 남 모를 성장기의 아픔이 있다는 사실 등은 그들의 삶과 글을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그런가 하면 시인 이재무의 슬픔, 소설가 전경린의 고독, 소설가 한강의 폭력, 소설가 정유정의 악, 소설가 김숨의 연민처럼, 문인들이 천착하는 세계와 대상을 한마디 열쇳말로 요약하는 눈썰미는 오랜 독서와 교유의 결과일 것이다.
“신은 그냥 고요히 보여주시는 것 같다. (…) 네 안에 있는 희망이야말로 너의 신이라고(…)”
제주 조천 바닷가에 북카페를 연 손세실리아 시인은 신을 보듯 바다를 본다는데, 이 책의 지은이는 “그들(=인터뷰이들) 안의 내밀한 세계와 신을 짧은 지면 안에서라도 대면하고 싶었다”(‘책 머리에’)고 고백한다. 인터뷰어를 통해 독자들 역시 작가들의 텍스트와 내면을 한결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