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지음/와이즈베리·1만5000원 한국 학벌사회의 모순을 발가벗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주인공 김민섭. 이번엔 우리의 일상을 착취하는 언어를 파헤친다. ‘훈’(訓)이라고 불리는 이 말들은 가훈·급훈·교훈·사훈 등의 형식을 띠거나,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금언 또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같은 아파트 홍보 문구로 변주되며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려 든다. 지은이는 학교-회사-개인 세 가지로 범주를 나눈 뒤 갖가지 훈의 양태와 위력, 그 모순을 비판한다. 고정적인 성역할에 매몰된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교체하려다 동문회 반대로 좌절된 원주여고와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로 ‘여자다워라~’라는 교가 문구를 바꾼 강화여고의 대조적 사례는 훈 바꾸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훈은 섬뜩하기도 하다. “우리는 두배 더 빨리 출근한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은 회사는 얼마나 살벌한가. 지은이는 “9시1분은 9시가 아니다”라고 돌려 말하는 한 스타트업을 소개하면서 ‘우아한 훈’도 가능함을 일러준다. 더 나아가 새로운 훈을 ‘제안’한다. 지난해 돌발상황 때문에 국외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자, 그는 수수료를 물지 않고 항공권을 양도하기 위해 ‘영문 스펠링이 같은 한국 남성 김민섭’을 찾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숙박료·버스승차권 제공 등으로 선의를 보탰고, 결국 지은이보다 열살 어린 1993년생 김민섭은 행복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를 체험하며 지은이가 깨달은 훈이 참으로 훈훈하니 반드시 이 훈을 만나보시길.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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