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최원식·진은영 엮음/창비·1만5000원 김수영(1921~1968)은 1968년 6월15일 동갑내기 소설가 이병주 등과 시내에서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나고 2차를 가자는 이병주의 제안을 김수영은 “너 같은 부르주아와 술은 안 마셔!”라 뿌리치고 버스에 올랐다. 마포 신수동 집 근처에서 내린 그는 길을 건너려다 달려오는 버스에 치였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그가 경멸하는 노회한 부르주아의 능글맞은 여유를 거부”한 결과 사고를 당해 숨진 사실이 “피할 수 없는 정황의 필연적인 운명으로 다가온다”고,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썼다. 21명 필자의 대담과 글을 모은 김수영 50주기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에 실린 글이다. 김수영이 숨지기 직전 그와 순수/참여 논쟁을 벌였던 원로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글이 반갑다. ‘맨발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김수영 시에 관한 감각적 논의를 펼친 그는 “어떤 경로로도 시가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김수영 ‘신화화’를 경계하며, “서로 누운 자리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과 염무웅은 대담에서 1966년에 창간된 <창작과비평>에 대한 김수영의 애정과 인간적 교유를 회고했다.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 화려하게 낸 잡지 창간 모임에서 <창작과비평>을 추켜세우며 해당 잡지를 호되게 비판하던 김수영의 모습, 사전 연락 없이 집으로 찾아온 고은 시인 일행을 야단 치며 아울러 한국 문단의 낙후성과 병폐를 질타하던 장면, 창간 초에 시를 싣지 않던 <창작과비평>에 김현승과 김광섭, 신동엽 등의 시를 추천해 실었던 일화 등이 생생하다. 청년 시절에 김수영을 사표(師表)로 삼았다는 소설가 황석영은 “우리 모두 4·19혁명에 대한 그의 사유와 열정을 배우면서 자랐다”며 “김수영 시인이 시에서 이룬 바를 나는 산문에서 이루어내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소개했다. 시인 김정환은 ‘긴박한 현재’라는 시에서 “그는 누구보다 더 오랫동안/ 긴박한 현재일 것이다./ (…) / 그가 시의 본능으로 굳게/ 믿었던 것은 훗날과의/ 합작(合作)이다”라며 김수영 시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강조한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김수영 시 ‘봄밤’ 부분) 김수영의 시 ‘봄밤’ 일부를 경구 삼아 앞세운 단편 ‘봄밤’(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수록)의 작가 권여선은 대학 초년생 시절 학과 동급생 박혜정한테서 처음 김수영을 소개 받은 추억에서부터, 그로부터 2년 뒤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 “강물 위에 떨어진” 친구의 죽음,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30년 뒤 김수영의 그 시가 “계시처럼” 찾아와 소설로 몸을 바꾼 일을 그야말로 소설처럼 들려준다. 송경동 시인에게는 촛불혁명 2주년을 앞두고 특히 김수영의 시 ‘육법전서와 혁명’이 절박하게 다가온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역사적 반동이 창궐할 수 있는 숙주의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초조와 절박감이 58년 전 김수영의 시를 새삼 소환한 것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시인 나희덕·최정례·하재연·신철규 등과 문학평론가 임우기·송종원, 철학자 김상환과 사회학자 김종엽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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